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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기도
by 정현구2022-05-27

주기도문은 한 가지를 구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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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구 목사의 주기도문과 하나님 나라]


기도, 타인을 향한 자비의 실천

주기도문,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기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라: 구약의 메시지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라: 신약의 메시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마태복음 6:9-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누가복음 11:2-4.



시대를 초월한 기도문


기도의 내용은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굉장히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시대를 초월해 항상 해야 할 기도를 알려주셨다. 이 기도에는 주님이 가르치고자 하시는 진액이 다 들어 있다. 주기도문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 속에 주님의 모든 가르침과 교훈이 집약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주기도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에 관한 기도가 한 부분이고, 사람에 관한 기도가 또 한 부분이다. 전반부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부름으로 시작하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의 세 가지 기도로 이어진다. 이 세 가지는 다 하나님과 관련된 기도 제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죄를 용서하게 해 주시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악에서 건지소서”로 이어지는 후반부는 사람에 관한 기도 제목에 해당한다. 이렇게 주기도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고, 두 부분에 들어 있는 개별 기도를 다 합하면 총 여섯 가지가 된다. 사람에 관한 기도 제목 중에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를 두 가지로 본다면 일곱 가지가 될 것이다.


이 여섯 혹은 일곱 가지 기도 제목을 하나씩 깊이 마음을 담아 묵상하면서 기도하면, 기도가 잘 안될 때도 기도의 문이 열린다. 정말 너무나 소중한 기도 제목이다. 우리는 이 주기도문을 단순히 일곱 가지 기도 제목의 나열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 기도 제목들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주기도문에 나타난 여섯 가지 혹은 일곱 가지를 늘 잊지 말고 기도해야 하면서 동시에 이 여섯 혹은 일곱 가지 기도 제목을 하나로 묶어 주는 핵심 제목을 깨달아야 한다. 이 여섯 혹은 일곱 가지 제목이 결국 무엇을 구하라고 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매일 그리고 평생 구해야 할 제목을 알려주신 모범 기도문인 주기도문에 담긴 핵심 간구 제목을 알아야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친 기도를 바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알 때 신구약 성경을 관통하는 흐름이 보이고,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의 수준과 깊이가 보이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 초월과 내재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로 기도를 시작한다. 여기서 ‘하늘’은 천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하늘은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를 말하기 위해서 쓰신 것이다. 인간은 땅에 있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고, 인간은 유한자이다. 하나님은 법칙을 초월하시는데, 인간은 법칙 아래 있다. 이처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절대 간격과 질적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부름으로써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이 초월자이심을 잊지 않게 해 준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보다 조금 더 힘이 있고 좀 더 지혜가 있는, 그저 상대적으로 우월한 분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초월자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분께 기도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하늘에 계신 분은 또한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으로 표현되는 초월적 하나님은 또한 우리의 아버지로서 이 세상에 내재하시는 분이시다. 우주를 초월하여 계시는 분이 이 우주 속으로 들어오셔서, 더 나아가 기도하는 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게 귀를 기울이실 만큼 가까이 계시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초월하시면서 동시에 내재해 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초월자가 아니라면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 줄 능력이 부족하고, 또 내재하는 분이 아니라면 능력이 있으나 내 기도에는 관심을 기울이실 이유가 없다. 초월자이면서 내재자일 때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라고 부르라 한다. 그래서 멀리 계시면서 동시에 가까이 계신, 초월자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내재자 아버지이신 그분을 바라보라 하고, 그분께 구하라 한다.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오며: 기도자의 마음가짐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부른 뒤에 제일 먼저 나오는 기도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이다. 이 땅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우리는 이 기도제목을 보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기 위해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혹시 우리가 기도해서 하나님이 더 거룩해지시기를 바란다면 오산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은 ‘절대 거룩’이라 더 거룩해지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점점 더 높아지실 분이 아니라 이미 최고로 높으신 분이시다. 그러니까 이 기도는 하나님이 더 거룩해지고 하나님이란 존재가 더 높아지게 해 달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완전히 거룩하시고 가장 높으신 분을 향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기도자의 바른 태도를 강조한다고 할 수 있다.


김세윤 교수는 ‘주기도문 강해’에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를 설명하면서 이것을 당시 유대 전통과 맥락에서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실상 기도를 가르치신 주님도 유대 전통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고, 제자들도 구약부터 내려오는 유대 전통의 큰 물줄기 속에서 영성을 훈련해 가고 있던 사람들이었으므로, 이 부분을 유대의 기도 전통 속에서 읽는 것이 필요하다. 김 교수는 “하나님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내용은 십계명 제3계명의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십계명에 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라는 계명 때문에, 유대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대단히 경건한 마음을 가졌다. 필사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쓸 때는 펜을 씻고 목욕재계한 후에 쓸 만큼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경외감이 충만했다.


그런데 기도자가 그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우리는 익숙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사실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른다는 것은 혁명적인 일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게 허락하셨지만, 아무리 하나님을 친밀한 용어로 부른다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경건한 경외심을 가지고 그 이름을 불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문은 하나로 독립된 간구 제목이라기보다는 기도하는 사람의 경건한 마음가짐을 촉구하는 기도인 셈이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의 통치


그 다음에 이어지는 기도는 “나라가 임하시오며”이다. 사실상 주기도문 중 간구의 기도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해가 많다. 성경에는 “나라가 임하시오며”로 나와 있지만, 도리어 ‘내가 하나님 나라에 가게 해 주시고’라는 생각을 하면서 기도하는 이가 많다. 여기서 ‘나라’는 영어로는 ‘nation’이다. 이런 번역 때문에 ‘나라’를 현대적인 국가 개념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원어는 ‘kingdom’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하나님이 왕으로서 통치하실 것(dominate)을 구하는 기도이다. 이 간구를 풀어 쓰면,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달라는 기도이다. 하나님이 왕으로서 이 땅을 다스려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통치라는 단어를 들으면 거부 반응이 생긴다. 특히 우리가 근·현대에서 경험했던 통치가 백성을 섬기는 통치가 아니라 지배하는 통치였으므로 하나님의 ‘통치’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실제로 역사 속 대부분의 통치 행위는 백성의 자유를 뺏고, 백성을 통치자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는 은혜의 통치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통치 받는 사람을 가장 자유로운 존재, 가장 성숙한 존재로 만들며 그 사람을 가장 그 사람답게 만드는 통치이다. 이 기도문은 이런 자비로운 통치, 은혜의 통치, 하나님의 헤세드가 있는 통치, 인격적인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기를 간구하는 기도이다.


이어서 기도하는 내용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이다.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개별적 사안에 대해 미리 결정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오히려 주기도문 앞뒤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의 의미는 무엇인가? 먼저 하늘이 어떤 곳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의 ‘하늘’은 황금 보석으로 꾸민 사후의 어떤 영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뜻이 거부당하지 않고 온전히 실현된 곳’이다. 하나님의 뜻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곳이 하늘인데, 이 땅도 그런 하늘처럼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 기도에서 하늘과 땅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땅은 하나님의 뜻이 거부당하고 배척당하고 있는 곳이다. 땅에는 하나님의 뜻을 배척하는 존재가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과 사탄이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두 인격적 존재의 배척이 있는 바로 이 땅이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하늘처럼 되기를 비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라가 임하소서”와 “뜻이 이루어지이다”는 기본적으로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 땅에 임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이는 “나라가 임하소서”라는 내용이 마태복음에는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로, 누가복음에는 “나라가 임하시오며”로만 나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마태복음은 “나라가 임하소서”를 두 개의 진술로, 누가복음은 하나로 표현했는데, 마태복음이 누가복음보다 훨씬 더 조직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도는 산문이라기보다는 운문에, 글보다는 노래에 가깝다. 기도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일종의 시와 노래라고 볼 수 있는다.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에도 일종의 운율이 담겨 있다. 하늘에 관한 기도 세 가지, 인간에 관한 기도 세 가지가 나오면서 하나의 운율을 만든다. 그래서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이다”라고 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전반부 세 가지 기도의 핵심은 “나라가 임하소서” 곧 “하나님이 다스려주소서”라는 것이다.


통치가 임해야 할 땅


이제 주기도문의 후반부를 보자. 후반부는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죄를 사해 주시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로 시작한다. 후반부는 하나님에 대한 내용을 담은 앞부분과는 뚜렷이 구별되며, 사람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면 두 부분은 완전히 구별된 별개의 내용일까? 아니면 이 두 부분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있는 것일까?


주기도문은 이 두 부분을 연결하고 있다. 그래서 두 부분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통일된 하나의 기도를 드리도록 가르치고 있다. 마태복음 6장의 주기도문 본문을 보면 그런 연결성을 발견할 수 있다. 전반부는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로 끝난다. 그러다 후반부는 갑자기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시험에서 건져 주소서”란 간구로 넘어간다. 전반부에서 언급되었던 “통치가 임해야 할 땅”을 단지 ‘추상적인 곳이나 일반적인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주기도문을 가만히 보면 그렇지 않다. 그 땅은 아주 구체적인 곳으로서, 기도자가 기도하는 바로 그 자리이다. 기도자가 기도를 위해 서 있는 실존적 현실이다. 그곳이 바로 아버지의 뜻과 통치가 이루어져야 할 땅이다.


사람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땅은 어떤 곳인가? 결국 경제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현실이다.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라는 기도가 나오는데, 이는 인간이 경제적인 문제로 고뇌하고 고통 받는 삶의 땅에 아버지의 나라와 통치가 임하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또 “죄를 용서해 주소서“라고 기도하는데, 이는 인간관계 문제로 얽히고설킨 이 삶의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또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람을 넘어뜨리는 유혹이 많은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인터넷은 잘 사용하면 아주 좋은 이기가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잔인한 흉기가 된다. 세상 대부분의 것들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중립적이다. 그것들은 사람을 더 성숙하게 하는 훈련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사람을 타락시키는 유혹이 될 수도 있다. 충분히 선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 유혹 속에서는 악의 도구가 된다. 돈도 마찬가지다. 중립적 도구인 돈은 잘 사용하면 좋은 일에 쓰일 수 있지만 잘못하면 수많은 사람을 비극에 빠뜨리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건은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하는 기회도 되지만 우리를 타락하게 만드는 유혹도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유혹이 가득한 이 땅 위에 아버지의 다스림이 임하기를 소원한다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악과 구조적인 악이 존재하고, 악한 자인 사탄이 활동하고 있는 이 땅에 사는 우리 역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이처럼 주기도문은 우리에게 여섯 또는 일곱 가지를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흐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제목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내가 서 있는 이 땅을 다스리게 해 주소서.” 한마디로 주기도문은 한 가지를 구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이다. 



이 글은 ‘하나님 나라 복음’(새물결플러스)에 실린 정현구 목사의 “주기도문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복음”의 일부를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다시 엮은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그리고 평생 구해야 할 제목을 알려주신 모범 기도문인 주기도문에 담긴 핵심 간구 제목을 알아야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친 기도를 바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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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정현구

정현구 목사는 부산대와 서울대학원 영문과를 거쳐 고신대신대원(신학)과 예일대와 밴드빌트 대학(기독교사상사)에서 수학했으며, 서울영동교회 담임목사와 기윤실 공동대표, 희년선교회 이사장, 복음과도시 이사 등으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광야에서 삶을 배우다’, ‘다스림을 받아야 다스릴 수 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