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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달프의 죽음

톨킨이 내 마음을 찢어놓았을 때

by Gerrit Scott Dawson2022-07-11

죄는 슬픔의 화살을 존재하는 모든 것의 중심에 심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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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이 삶을 바꾸기도 한다

“한 문장이 우리 마음에 너무 강력하게 박혀 다른 모든 것을 잊게 만들 때, 바로 그 한 문장이 끼친 효과는 엄청날 수 있다.” ―존 파이퍼  



“빨리 도망가, 이 바보들아!” 그는 이렇게 외치고 사라졌다.  


이것은 간달프가 카자드둠 다리 아래 심연으로 미끄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다. 지난 14년 동안 그 어떤 말도 이 말처럼 내 마음을 헤집어놓은 것은 없었다. 


중학교 선생님은 점심 시간에 일종의 간식처럼 ‘호빗’(The Hobbit)을 읽어 주었다. 우리는 그 시간을 사랑했다. 선생님은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3부작에는 정말 좋은 내용이 많다면서 꼭 읽어 보라고 했다. 9학년 때 나는 그 도전을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내용이 꽤 썰렁했다. 긴 노래와 너무도 많은 대화! “엘론드 평의회”는 내가 그때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두꺼운 장이었다. 며칠이 걸렸다. 그러나 마침내 반지 원정대가 반지를 파괴하기 위한 여정에 올랐을 때 상황이 나아졌다.


“빨리 도망가, 이 바보들아!”


어느 금요일 밤, 나는 평소에 보던 ABC 시트콤 대신 소파에서 책을 읽었다. 모리아 광산 밖에 있는 물 속 감시자가 나를 겁에 질리게 했다. 나는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다. 


나는 “어둠 속 여행” 내내 쉬지 않고 읽었다. 다음 날이 학교에 안 가는 날이라서 부모님이 나를 빨리 자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나는 다음 장을 읽기 시작했다. 원정대가 모리아 드워프들의 행동이 마지막 시간까지 기록된 썩어 가는 책을 발견했을 때, 내 안에 숨은 미래의 작가성이 감격했다. 그 책 속의 내용은 “그들이 오고 있다…”라는 음침한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원정대가 고대의 드워프처럼 지금 갇혀 있고 탈출하기 위해서는 싸우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에 내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가까운 재앙은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오는 법이다. 프로도조차도 창에 찔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숨겨진 미스릴 은색 셔츠 덕분에 프로도는 생명을 건졌다. 그래,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게 맞다. 불가능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영웅은 여전히 승리해야 한다. 그래서 간달프가 마지막 다리에서 악마 발록과 대면했을 때 나는 간달프의 승리를 확신했다. 그리고 간달프는 거의 이긴 것 같았다. 마법사가 세 번이나 “넌 여기를 못 지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간달프의 능력은 발록이 서 있는 다리를 부쉈고, 악마는 다리 아래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들리지 않게 소리쳤다. 그런데 바로 “안돼!”라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추락하는 발록이 휘두른 채찍이 간달프의 다리를 움켜쥐었다. 톨킨은 이렇게 썼다. “간달프는 잠깐 비틀거리다가 쓰러졌다. 그리고 돌을 잡고 버티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심연으로 미끄러지기 직전, ‘빨리 도망가, 이 바보들아!’를 외치고는 사라졌다.”


문장 하나에 상처를 입었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말 그대로 가슴을 찔린 거 같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등장인물이 죽다니. (그렇게 보였다.) 내 가슴이 잘리는 거 같았다. 책 한 권이, 아니 문장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만들 수 있다니 말이다. 나는 울부짖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 장면을 사랑했다. 독서를 통해 이렇게 깊은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건지 미처 몰랐다. 너무도 끔찍했지만 아름다웠다. 간달프는 심연으로 떨어졌다. 그는 사라졌다. 나는 그 사실을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당시 나는 막 그리스도를 향해 깨어나고 있었기에 어떤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그게 뭔지, 이 장면 속에 숨은 복음이 함축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의식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몇 년을 통해서 톨킨은 이 문장 속 깊은 의미를 내게 조금씩 가르쳐 주었다. 


죄가 머무는 곳에는 슬픔이 따라온다.


‘실마릴리온’(The Silmarillion)에서 톨킨은 앞으로 구축할 전설 전체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이 신화 세계에서 창조주인 일루바타르(Ilúvatar)는 위대한 음악이라는 주제를 통해 세계를 존재하게 만든다. 그러나 창조주의 천사 중 하나인 멜코르(Melkor)는 자신의 음악을 만들고 싶어한다. 


자신의 영광을 찾던 멜코르는 일루바타르의 음악과 상반되는 주제를 노래하기 시작한다. 불협화음은 아름다운 창조에 혼란을 가져왔다. 일루바타르는 이 혼돈이 도무지 고칠 수 없을 것 같은 상태가 될 때까지 오랫동안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런 다음, 일루바타르가 다시 일어나 음악의 또 다른 주제를 선언한다. 이 새로운 음악은 “깊고 넓으며 아름답지만 느리고 측량할 수 없는 슬픔이 뒤섞여 있다. 아름다움은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The Silmarillion, 1977, pp. 16–17). 창조주는 부조화를 더 놀라운 음악으로 엮어낸다. 새로운 노래는 슬픔까지도 포함한다.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선함 아래에 존재하는 슬픔을 느낀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대적하여 자신의 영광을 구했기 때문에 생긴 슬픔은 모든 피조물의 깊은 곳에서 흐르기 마련이다. 요컨대 죄는 슬픔의 화살을 존재하는 모든 것의 중심에 심어 놓았다. 나는 여호와께서 인간의 사악함을 본 노아 시대를 기억한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 하셨다”(창 6:6).


간달프의 추락에 대한 글을 읽던 그날 밤 나를 덮쳤던 슬픔은 바로 이런 원초적인 슬픔의 일부였다. 내 마음이 먼저 울었다.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흘러서는 안 돼!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악에게 지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닌가? 게다가 이야기가 꼭 이렇게까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닌가? 간달프는 이미 발록을 물리쳤다. 그러나 악은 결코 양보하지 않는다. 발록이 휘두른 채찍은 그냥 간달프를 비켜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악은 실패하지 않고 한 번 더 슬픔을 낳았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죄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악함(malice)으로 굳어진다. 그 결과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슬픔의 노래로 짜내려 가는 상실과 해로움이다. 심지어 우리 하나님도 그 슬픔을 느낀다. 그날 밤 나는 그 쓴맛을 보았다.


희생은 종종 구원을 낳는다.


간달프는 심연으로 내려갔고, 슬픔은 원정대를 절망시켰다. 간달프를 잃은 그들은 어떻게 더 나아갈지 방법을 몰랐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전진했다. 이야기는 결코 이런 충격적인 패배로 끝나지 않는다.


마법사의 거칠지만 애틋한 마지막 말은 원정대를 공포의 마비에서 깨웠다. 울면서도 그들은 모리아에서 안전하게 빠져나왔다. 간달프의 희생은 원정대가 위험에서 탈출해 앞으로 나아가도록 길을 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 이상이 있다. 간달프가 남긴 선물은 이제 원정대가 슬픔을 넘어 용기를 찾고,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불태우고, 믿음의 절벽 끝자락까지 붙들도록 촉구했다. 남은 8명의 원정대는 서로를 위해 희생하며 나아갔다. 


많은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라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롬 5:8). 이 희생은 우리 삶의 행로를 바꾸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이제부터,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하여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고후 5:15). 타인을 사랑하기에 대신 고통받는 것이 바로 구원이다. 악(evil)은 마지막에 할 말이 없다.


간달프의 다리를 잡아챈 발록의 채찍이 마법사의 희생을 무효로 만들지 못한다. 간달프의 희생은 원정대가 탈출하도록 하는 즉각적인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의 희생은 반지의 제왕이 결론짓는 완전한 구속이라는 주제와 연결되며 나아가서 톨킨이 아름다운 말을 만들어 낸 승리로 이어진다. 


결국 좋은 재앙을 예상하게 된다. 


나는 간달프의 귀환을 기대하며 계속 읽어야 했다. 반지가 파괴되고 정당한 왕이 즉위하고 또 중간계가 복원되는 것을 보려면 더 멀리 가야 했다. 그러나 간달프의 희생은 충격적이고 날카로운 슬픔 속에서도 내 안에 희망을 주었다. 모리아의 심연에 묻힌 이 사랑의 씨앗은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어야 했다.


간절히 바라지만 예상치 못한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갑작스러운 반전을 표현하기 위해 톨킨은 유카타스트로피(eucatastrophe)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세상의 운명이 필연적으로 돌진하는 것처럼 보이는 죽음과 멸망이라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게 아닐 것이라고 희망하는 인간의 마음이 모든 역경에 맞서 만들어내는 결의를 표현하는 말이다. 톨킨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야기 속 유카타스트로피에 대해서 썼다.


그것은 눈물을 흘리게 하는 기쁨으로 너를 찌를 것이다…. 그것은 너라는 인간의 본성이 가진 진실을 드러내는 독특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마치 빠졌던 어깨가 다시 제자리를 잡는 것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감지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이 만들어진 위대한 세계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부활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유카타스트로피란다…. 또한 본질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질적으로 슬픔과 같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한단다. 왜냐하면 기쁨과 슬픔은 결국 원래 하나였고, 또 같은 곳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란다(The Letters of J.R.R. Tolkien, 1976, p. 100).


간달프의 추락이 주는 비통함에 찔리는 순간에조차도 느꼈던 희망은 전체 이야기에 대반전이 있을 것을 예고했다.


간달프는 다시 일어나서 웃었다.


기쁘게도 우리는 샘 감지의 겸손한 단순함에서 가장 깊은 진실을 본다. 반지가 파괴된 후 샘은 잠에서 깨어나 간달프가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외쳤다.


“간달프! 난 당신이 죽은 줄 알았는데! 그때 나는 사실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슬픈 일이 꼭 언제나 다 현실이 되는 건 아닌가 보네요. 도대체 그 세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큰 그림자가 떠났어,”라고 간달프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웃었고 그 웃음 소리는 음악 같았고, 마치 메마른 땅을 적시는 생수 같았다(The Return of the King, 1976, p. 988).


그날 밤 간달프가 추락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구원에 관한 모든 이야기에 담긴 깊은 진리의 힘을 생생하게 느꼈다. 각각은 진짜 이야기를 이루는 그림자이다. 그리스도는 죽었다. 그는 심연 속 길을 잃은 완전한 정지 상태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살아남으로 모든 것을 바꾸었다.


간달프가 떨어졌을 때, 그 때는 차마 말할 수 없었지만, 그의 죽음과 파멸에 대한 슬픔으로 내 마음은 부서졌다. 그러나 원정대는 계속 길을 나아갔다. 나도 계속 읽어나갔다. 원정대의 탐험은 결코 좌절되지 않았다. 간달프는 일어설 것이다. 우리도 우뚝 일어설 것이다. 슬픔이 꼭 슬픔으로 끝나지 않는 회복된 세상에서 말이다. 



원제: The Death of Gandalf: When Tolkien Pierced My Heart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타인을 사랑하기에 대신 고통받는 것이 바로 구원이다. 악은 마지막에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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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Gerrit Scott Dawson

First Presbyterian Church(Baton Rouge, Louisiana) 목사. Raising Adam: Why Jesus Descended into Hell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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