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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천로역정

기독교 고전으로의 초대

by Derek Thomas2022-09-08

천로역정은 성경의 절대 권위에 대한 번연의 믿음을 보여준다. 거의 모든 행이 성경 구절 또는 문단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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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고전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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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는 바뀔 수 있습니다.)


J. R. R.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 3부작처럼, 존 번연의 천로역정도 일종의 로드 트립이다. 파괴의 도시에서 천상의 도시로 가는 크리스천’(Christian)의 여정과 그 과정에서 그가 겪은 많은 만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기술적으로 천로역정은 두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두 번째 부분은 ‘크리스천’의 아내 ‘크리스티나’와 그녀의 네 아들이 겪는 동일한 여정을 서술한다. 몇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두 번째 부분이 보통 그리스도인이 겪는 천국 여정을 더 균형감 있게 묘사한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천로역정과 나름 익숙한 것은 ‘현자’, ‘유연’, ‘완고함’, ‘형식주의자’, ‘수다쟁이’, ‘거대한 절망’ 같은 등장인물과, 세계의 황야, 허영의 시장, 길가의 초원, 절망의 수렁, 의심의 성, 맛있는 산 등과 같은 이야기 속 장소를 일상 대화에서 자주 사용하기 때문이다.


C. H. 스펄전을 비롯해 천로역정을 여러 번 읽었다고 자랑할 사람이 적지 않겠지만, 이 책을 처음 손에 잡은 사람이 기대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구절구절마다 성경이 넘친다


첫째, 천로역정은 성경의 절대 권위에 대한 번연의 믿음을 보여준다. 거의 모든 행이 성경 구절 또는 문단을 반영한다. 번연을 쿡 찌르면 그의 몸에서 흘러나올 피는 “성경”일 거라고 말한 사람은 스펄전이었다.


두 번째 부분 중 한 내용에는 어린 ‘매튜’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분별’(Prudence)이 나오는데, 이 대화는 성경에 대한 번연의 깊은 존경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분별. 성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매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입니다.

분별. 성경에는 네가 이해 못 하는 내용도 많지 않니? 

매튜. 많아요. 

분별.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을 만나면,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매튜. 하나님이 나보다 지혜로운 분이세요. 그리고 내게 유익하다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부분은 꼭 알려주실 것이라고 믿고 저는 기도해요. (천로역정, 228)


죄의 짐을 내리고


둘째, 천로역정은 회심을 특히 강조한다. 큰 죄의 짐이 제거되어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가 무덤으로 들어가기까지, ‘크리스천’에게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크리스천’에게는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까? 안도감과 확신을 찾기 전까지 왜 그토록 긴 시간 동안 죄로 인해 아파하고 싸워야 했던 걸까? 번연은 모든 회심이 다 이런 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는 지금 은근히 값싼 은혜를 비판하면서,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죄와의 고통스러운 투쟁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걸까? 1678년 이 책의 초판이 나오고 번연이 받은 비난이 바로 이 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사람들이 보는 것처럼) 일종의 “준비주의”(preparationism)의 시도와는 거리가 먼 번연은 단지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다. 구원의 확신에 이르기까지 그는 몇 년 동안 죄가 주는 죄책감과 씨름했다. 그렇기에 실제 회심의 순간이 아니라 ‘크리스천’의 어깨에서 죄의 짐이 떨어진 바로 그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번연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살짝 덧붙이자면, 2부에 나오는 ‘크리스티아나’와 네 소년의 개종은 훨씬 더 쉽게 일어났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도 나름 흥미롭다.)


죄인을 의롭다 하심


셋째, 천로역정에는 대속 속죄에 대한 확고한 이해가 담겨있다. 어느 시점에선가 소망 (허영의 시장에 살았지만 ‘믿음’이 사망한 후 ‘크리스천’에게 합류함)은 ‘믿음’과 ‘크리스천’에게 그의 회심과 관련해서 자세하게 설명할 것을 요구받는다. ‘믿음’은 죽기 전에 ‘소망’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는 누군가의 의로 구원받지 못한다면, 나 자신의 의는 말할 것도 없고 온 세상의 모든 의를 다 합쳐도 나를 구원할 수 없어.” ‘크리스천’이 이렇게 묻는다. “그럼 그 죄 없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봤어? 그리고 그 사람으로 인해서 어떻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데?” ‘소망’은 이렇게 대답한다. 


응, ‘믿음’이 얘기해줬어. 그분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우편에 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어. 그리고 또 ‘믿음’이 말하길, 그가 육체를 입고 스스로 행한 일과 또 그가 나무에 달려 고난 당하신 것을 네가 믿음으로서 너는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한다고 했어. 내가 또 물어봤어. 어떻게 그분의 의로움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을 정당화하는 효능을 가질 수 있는지 말이야. ‘믿음’이 이렇게 말했어. 그분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자신이 하셔야 할 일을 하셨다고 말이야. 또 그분은 죽음을 죽이셨는데, 그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서, 그래서 나 같은 죄인도 그분을 믿음으로 그의 가치가 내게로 전가된다고 말이야. (143)


그리고 ‘소망’은 사실 그 이야기를 얼마나 믿기가 어려웠는지, 그러나 결국에는 “참회의 기도”(sinner’s prayer)를 드리게 되었다면서 회심의 과정을 설명한다. 


나 같은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또 믿게 하신 하나님의 긍휼이 너무도 크십니다. 내가 보니, 주님의 의가 없거나, 내가 그 의를 믿지 아니하였더라면, 나는 완전히 버림을 받았을 겁니다. 주님, 당신은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을 구할 구주로 정하셨습니다. 더욱이, 당신은 저와 같은 불쌍한 죄인에게 기꺼이 그를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참으로 죄인입니다.) 주여, 지금 이 시간을 통해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영혼에 구원을 주시고, 나로하여금 당신의 은총을 더 크게 알게 하소서. 아멘. (144)


‘소망’은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자신에게 보여주실 때까지, 이 기도를 “수없이” 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 아들을 육신의 눈이 아니라 이해의 눈으로 보았다. 그랬다. 어느 날 나는 매우 슬펐다. 내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슬펐다. 그리고 이 슬픔은 내 죄의 거대함과 사악함을 비로소 제대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때에는 내게 주어진 길은 지옥밖에 없다고, 내 영혼에게 가해질 것은 영원한 저주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주 예수께서 하늘에서 나를 내려다보시고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렸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드리라.’ (145)


발췌를 하려면 얼마든지 더 할 수 있겠지만, 번연이 가진 개종 교리가 얼마나 복음주의적 성격을 가지는지는 이 정도로도 충분할 것이다. 


‘고통받는 자가 이긴다’

 

넷째, 천로역정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자리 잡은 고난을 중심 무대로 삼는다. 번연은 온갖 시련을 겪은 사람이었다. 그는 사도 바울 못지않게 얼마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라고 말할 수 있다. 동시대의 청교도 설교자 존 기어(John Geere)와 더불어 번연도 자기 삶의 모토로 얼마든지 ‘vincit qui patitur’, 곧 “고통받는 자가 이긴다”를 채택할 수도 있었다.


번연은 1660년 불법 설교로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그리고 무려 12년을 영국 베드포드에 있는 감옥에서 보냈다. 석방되고 3년 후에 다시 체포된 그는 다시 6개월 동안 감옥에 갇혔다. 천로역정은 감옥에서 시작되어 두 번째 투옥 중에 완성되었다. 이 기간에 그는 한 현대 정신과 의사가 “강박 장애”라고 명명한 깊은 불안에 시달렸다.


천로역정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인의 삶이 얼마나 고통으로 가득한지, 그 사실을 모를래야 모를 수 없다. ‘크리스천’과 ‘소망’이 거대한 절망과 그의 비슷한 수준으로 침울한 아내의 손에 잡혀 의심의 성 지하 감옥에서 보내며 거의 자살 충동을 느낀 며칠의 시간, 그리고 나중에 나오는 ‘아폴론’과의 전투 장면은 모든 문학을 통틀어 시련과 환난을 가장 생생하게 묘사한 내용 중 하나이다. 그리고 ‘믿음’이 순교한 장소, ‘바알세불’이 담당하는 허영의 시장이 있다.


여정이 주는 괴로움으로부터 ‘크리스천’을 준비시키기 위해서 ‘믿음’은 그를 처음에 통역사의 집으로 데려가는데, 그곳에서 ‘크리스천’은 무엇보다도 칼로 무장하고 투구로 보호되는 “가장 맹렬하게 베고 또 베는”(36) 용감한 사람들을 본다. 이 모든 것이 에베소서 6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인 군사에 관한 묘사를 떠올린다. 


마지막 강


다섯째, 청교도 정신의 정수를 보여주는 천로역정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도록 준비시킬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준비시킨다. 천상의 도시로 이어지는 강을 건너는 ‘소망’과 ‘크리스천’의 이야기는 가장 감동적인 비유 중 하나이다. 놀랍게도 ‘크리스천’은 마지막까지도 의심에 차서 몇 번이고 물에 빠지지만 친구에 의해 구출된다. ‘소망’이 이렇게 말한다. 


이 물을 건너면서 네가 겪는 고난과 고통은 하나님께서 너를 버렸다는 의미가 아니야. 단지 너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야. 환난 중에도 여전히 네가 그의 선하심만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는지 아닌지를 보시기 위한 거야. 


‘크리스천’은 이렇게 대답한다. 


오, 나는 그를 다시 보고 있어. 그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셔.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내가 함께 있으리라, 강이 너를 집어삼키지 못할 것이다. (159)


18세기 감리교도들은 그 누구보다 죽음을 잘 맞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번연은 목회자의 심정으로 ‘크리스천’이 막판에 의심하는 장면을 넣은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죽음을 앞에 놓고 행여라도 마음이 흔들릴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시험에 빠지지 않고 도리어 꼭 필요한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1부의 가장 마지막 단락은 내가 읽은 것 중 가장 충격적이다. 십대 시절 천로역정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번연의 글을 제대로 읽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나는 읽다가 큰 소리로 “안 돼!”라고 소리쳤던 것을 기억한다. 여기에서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참겠다. 단, 천로역정을 처음 읽는 독자에게 충고를 하나 하자면, 마지막 단락을 읽고 싶은 충동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꾹 참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으라는 것이다. 




원제: The Pilgrim’s Progress: A Reader’s Guide to a Christian Classic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청교도 정신의 정수를 보여주는 천로역정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도록 준비시킬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준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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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Derek Thomas

데릭 토마스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콜럼비아에 위치한 First Presbyterian Church의 담임목사이다. 또 애틀랜타에 위치한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조직신학과 목회신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Ligonier Ministries의 작가이며, 저서로는 한국어로 번역된 '웰린 강해 신서' 시리즈와 How the Gospel Brings Us All the Way Home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