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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란 무엇인가?
by 최창국2022-10-03

영성이란 용어가 ‘어떤 영적 상태’나 ‘지향성’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다면, 모든 기독교적 경험이나 행위는 영성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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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안에서 영성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영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수많은 논의와 다양한 이해 속에서 혼돈과 유행의 언어로 흐르는 아쉬움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영성이란 용어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 막연하게 기독교적 언어라는 전제 아래 사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영성에 대한 잘못된 주장과 오해들도 있다. 개신교 학자 중에는 성경에 영성이란 용어가 없기 때문에 영성은 성경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이는 대단히 단순한(naive) 관점이다. 예를 들어 보자. 성경에 이성과 감성이란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성과 감성이란 용어를 일반적으로 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경적 의미와 가치를 논할 때 중요하게 사용한다. 이성을 비성경적인 용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단지 이성이 때로 비성경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또한 신학이란 용어도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신학이란 용어는 빼놓을 수 없는 기독교적 언어요 기독교 정체성을 설명해 주는 개념이다. 게다가 윤리란 용어가 성경에 등장하지 않지만, 기독교 윤리란 말은 이미 일반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영성이란 용어가 성경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고 하여 성경적 개념이 될 수 없다는 견해는 바른 견해가 아니다. 게다가 성경에는 영성이란 용어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영성이란 개념을 근본적으로 등장시킬 수밖에 없는 개념이 등장한다. 바로 ‘영적’(spiritual)이란 용어이다. 바울은 ‘영적’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고전 2:14-15).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영성이 있어야 영적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은 보편적인 논리이기도 하다. 마치 감성이 있을 때 감성적 삶이 가능하듯이 말이다. 따라서 영성이란 용어가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하여 영성을 성경적 용어로 볼 수 없다고 말하기보다는 성경에는 영성이란 용어가 직접적으로는 등장하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더 타당하다. 


개신교 학자 중에는 영성이란 용어보다 경건을 사용해야 한다는 견해들도 있다. 이들은 영성은 종교개혁 전통의 언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이는 바른 이해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 증거로 칼뱅의 멘토였던 마르틴 부쳐(Martin Buchers)가 ‘참 신앙을 위한 투쟁 가운데 있는 슈트라스부르그와 뮌스터 1532-1534’에서 경건과 영성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533년에 베른하르트 바커(Bernhard Waker)의 말씀의 종의 능력에 관해서 기술하면서 말씀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가질 때만이 경건도 영성도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Martin Buchers, Strasburg und Munster im Kampf um den Rechter Glauben 1532-1534,  426). 부쳐는 영성을 내적인 차원 또는 세계로 경건은 외적인 차원 또는 세계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그의 구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영성과 경건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종교개혁의 후예들에게 많은 의미를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경건과 영성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성경은 경건을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적 또는 실천적 삶으로 설명한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6-27). 하지만 영성은 경건한 삶을 위한 영적 능력(capacity)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교회 안에서 영성이란 의미는 내적 열정, 성령 체험, 영적 경험, 기도, 하나님 사랑, 경건, 신앙, 신명에 이르기까지 그 의미는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더욱이 문제는 그 용어를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 용어의 의미에 대한 분명한 이해 없이 사용하기도 하고, 한 저자의 글이나 책에서도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단지 좋은 용어이고 현재 유행 언어이기에 그냥 쓰는 경우가 많다. 


한국 교회 안에서 영성을 말할 때 ‘영성’이란 용어 대신에 ‘신앙’이란 말을 넣어도 거의 다 말이 된다. 국내에서 쓰인 영성에 관한 논문들과 책들 가운데 영성이란 말 대신에 신앙이란 말로 대체해도 글의 흐름이나 내용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한국 교회 안에 ‘영성’이란 단어가 혼란스러운 현상을 초래하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용어 사용에서 구분의 미비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정신’이란 용어가 인간과 관련하여 단독으로 사용될 때는 일반적으로 ‘인간 본성의 한 요소 또는 차원’을 의미하지만 수식하는 용어가 붙으면 그 의미가 제한되거나 달라진다. 예를 들면, ‘한국인의 정신’이라고 할 때다. 이때의 ‘정신’이란 의미는 ‘어떤 상태’나 ‘지향성’을 의미한다. 이처럼 ‘영성’이란 용어 사용도 이런 맥락과 같이 구분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영성이란 용어가 ‘어떤 영적 상태’나 ‘지향성’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다면, 모든 기독교적 경험이나 행위는 영성이 되어버린다. 하나님 경험, 기도, 경건, 예배 등은 모두 영적 경험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성이란 무엇인가? 물론 영성이라는 용어는 매우 애매한 용어일 뿐만 아니라 간결하고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정의하기 어려운 특성도 있다. 커쯔(Ernest Kurtz)와 켓참(Katherine Ketcham)은 영성에 대한 정의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영성이란 무엇인가? … 진리, 지혜, 아름다움, 장미의 향기 등 이 모든 것은 영성과 비슷하게 막연하거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우리가 그것들을 알지만 결코 그 특성을 색으로 칠하거나 그 성질을 설명해 낼 수 없고; 이것들은 인치나 도수로 이해될 수 없으며; 소리를 내지 않아 데시벨로 측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실크나 나무나 시멘트와 같이 독특한 촉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향기를 내지도 않고, 맛도 가지고 있지 않고,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것들은 존재하고 있다. 사랑도 존재하고, 악한 것도 존재하고, 아름다움도 존재하고, 영성도 존재한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 존재를 정의할 때 항상 인식되는 실체들이다(Ernest Kurtz, Katherine Ketcham, The Spirituality of Imperfection: Storytelling and the Journey to Wholeness, 15-16).  


모든 인간은 영적 존재이다. 하지만 이러한 진술이 갖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뿐만 아니라 시대마다 다르고, 이론적 주장 또한 다양하다. 따라서 영성에 대한 이해는 대단히 중요하지만 정확한 정의는 어려운 과업이 아닐 수 없다.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가 지적한 것처럼 “요즘 ‘영’(spirit), ‘영적’(spiritual), ‘영성’(spirituality) 등의 말은 점차 흔해지고 있다. 피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러나 대개 의미가 불확실하며, 그것은 위험할 수 있다”(달라스 윌라드, 마음의 혁신, 27). 때문에 우리는 이 용어를 사용할 때 신중해야 한다. 바바라 보우(Barbara Bowe)는 영성이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를 살피기 위하여 1984-1995년 사이에 출판된 영성에 관한 책과 글을 분석하였다. 보우는 이 분석을 통하여 영성의 의미가 23가지로 각기 다르게 이해되고 정의되고 있음을 밝혔다(Barbara Bowe, Biblical Foundations of Spirituality, 10). 물론 영성이라는 말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은 그 용어가 전통적으로 너무나도 다양하게 이해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들의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창조적 선물로서 영성 이해가 간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영성이란 용어는 기능론적 용어이기보다는 존재론적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창조적 선물로서 영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이해는 영성 이해에 중요한 시금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초기 신학자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능력’, 즉 지·정·의와 같은 능력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은 주로 인간의 구조적 차원으로 이해된 이성과 도덕성 등으로 이해하고 인간의 기능적 차원은 인간의 구조성에 첨부되어 있는 일종의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최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의 구조적 차원인 능력과 가능성은 좀 덜 강조하고 ‘관계’를 보다 더 강조하였다. 인간 존재는 필연적으로 관계 속에 있는 존재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간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연을 돌보는 일들은 하나님 형상으로서 인간의 본질적 요소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하나님의 형상을 기능적이고 경험적 차원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구조적 차원으로만 하나님의 형상을 이해하려는 유혹과 동일하게 잘못된 것이다. 전자가 하나님의 형상의 구조적 또는 존재적 차원에만 강조점을 두었다면, 후자는 하나님의 형상의 기능적 또는 경험적 차원만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은 구조적 차원과 기능적 차원의 양면성을 모두 포함한다. 하나님의 형상의 구조적 차원은 인간의 이성적, 감성적, 영적 능력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칼뱅(John Calvin)은 하나님의 형상은 신성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하나님과 동료 인간과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를 향하여 반응할 수 있는 능력과 이러한 반응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구조적 차원의 하나님의 형상에 해당된다. 이러한 능력들은 인간의 이성, 감성, 몸, 영성 등과 같은 차원들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합리적, 감성적, 체현적(embodied), 영적 능력들은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들이다. 즉, 인간의 합리적 능력은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인 이성을 반영하고, 인간의 감성적 능력은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인 감성을 반영하고, 인간의 체현적 능력은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인 가시적인 몸을 통해 실현되며, 인간이 하나님과 생동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인 영성을 반영한다. 이러한 창조적 선물들은 통전적 관계 안에서 하나의 통합된 전체를 이루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창조적 선물들은 각각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구별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분리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그 형태와 반응은 다르지만 영적 삶을 위한 창조적 선물로서 영성을 선물로 받았다. 창조적 선물인 영성은 하나님, 자기 자신, 이웃, 창조 세계와의 생동적인 관계를 위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영적 삶과 경험은 존재적 영성(capacity)으로 인해 발생한다. 이는 마치 인간이 창조적 선물인 이성을 소유하고 있기에 이성적 삶을 경험하며 누리는 것처럼, 인간은 영성을 창조적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영적 삶과 경험이 가능하다. 이러한 영적 경험을 경험적 또는 기능적 영성이라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영성’(spirituality)이 아니라 ‘영적 생활’(spiritual life) 또는 ‘영적 경험’(spiritual experience)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적 차원의 ‘영성’과 경험적 차원의 ‘영적 삶’은 구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성은 행위적 개념이기보다는 존재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창조적 선물인 영성은 하나님과 생동적인 관계를 위한 능력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물론 영성의 경험적 또는 기능적 차원은 타락으로 인해 기능을 상실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회복, 유지, 성화의 여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영성 이해는 존재적 차원의 영성을 간과하고, 기능적 또는 경험적 차원으로만 이해하여 영성을 신령한 성품 또는 거룩한 성품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영성의 존재적 차원과 기능적 차원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영성의 존재적 차원에 대한 이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영성의 존재적 차원에 대한 이해 없이 기능적이고 경험적인 차원만을 강조하게 되면, 인간의 능동성만을 강조하는 영성이 될 위험성이 있다. 만약 인간의 기능과 행위만을 강조하고 존재의 은혜, 즉 창조적 선물인 영성을 간과하는 것은 성경적이라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인 존재론적 영성을 간과한 신령한 성품으로서 영적 추구도 자칫 성령을 고작 우리의 목표를 이루는 수단으로 여기기 쉽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그 형태와 반응은 다르지만 영적 삶을 위한 창조적 선물로서 영성을 선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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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창국

최창국(PhD, University of Birmingham, UK)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과 기독교전문대학원에서 실천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기독교 영성’, ‘해석과 분별’, ‘설교와 상담’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