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이슈

성경적 창조의 관점‘들’ (2)

OPC 창조연구위원회 보고서의 교훈

by 이윤석2023-07-01

기독교 세계관 운동 2.0 위하여

서울기독교세계관연구원(SIEW)과 함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섭니다.  

근래에 팀 켈러가 유신진화론자라고 비판하는 이들은 대체로 젊은지구론에 경도되어 있다. 물론 젊은지구론 자체도 주요한 관점이므로, 이 입장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젊은지구론 역시 기원의 문제를 완벽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겸손한 자세가 요청된다. 


하지만 그들은 젊은지구론이 아니면 유신진화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창조론을 공격하는 듯하다. 그들에게, 미국장로교회(PCA) 교단의 창조연구위원회 보고서에 이어, 여러 기독교 교단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정통장로교회(OPC)의 관점을 알려주고 싶다. OPC 교단은 1936년 메이첸(John Gresham Machen, 1881-1937)이 주도하여 미국장로교(PCUSA) 교단에서 독립하여 나온 교단이다.


OPC 교단은 2001년에 창조의 여러 관점을 연구하는 교단 차원의 특별 연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 위원회는 3년간 연구 활동을 수행하고 2004년 OPC 교단 총회에 ‘창조의 관점들 연구위원회 보고서’(Report of the Committee to Study the Views of Creation)를 보고하였다.


이 위원회가 창조에 대한 여러 관점을 고찰할 때 준거로 삼은 기본적인 신학적 입장은 다음과 같았다.


1. 참되고 살아계신 한 분 하나님이 영원 속에 홀로 계셨으며 그 옆에는 아무런 물질도 에너지도 공간도 시간도 없었다. 

2. 참되고 살아계신 한 분 하나님이 그의 주권적 작정에 따라서 무로부터 세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보이든 안 보이든)을 창조하기로 결정하셨다. 

3. 우주의 어떤 부분도 또는 어떤 생물도 우연히 또는 주권적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지 않고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다. 

4. 하나님이 사람,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의 담지자로 불멸의 영혼을 소유한다. 따라서 인간은 비록 그의 몸이 그 주변 환경의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다른 모든 지상의 생물들과는 다르다. 

5.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사람이 살아있는 생명이 된 것이지, 이미 선재하는 어떤 생물에 하나님의 형상을 새긴 것이 아니다. 

6. 전체 인류 가족은 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첫 번째 인간 부부로부터 내려왔으며, 이 계승은 일반적인 세대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7.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을 때 거룩했다. 그때 하나님은 아담 한 사람과 행위언약에 들어갔다. 언약에서 아담은 그의 후손들을 대표하며, 그가 그 요구사항을 어겼을 때 일반적 세대에 의해 계승되는 모든 인류는 그 안에서 죄를 범하였고 그와 함께 죄의 상태로 떨어졌다. 

8. 하나님은 창조의 일을 6일 동안에 하셨다. (우리는 ‘날’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을 인식하였으며, 한 해석이 여타 해석을 모두 배제하고 주장되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위의 신학적 입장은 이 위원회가 건전한 신학적 기반에 서서 연구 작업을 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위원회 위원들은 위 여덟 가지 확언에 모두 동의하였다. 다만 마지막 여덟 번째에 대해서는 창조의 일을 6일 동안에 하나님이 하셨다는 진술 자체에는 동의하나 ‘날’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해가 있었고 그런 서로 다른 이해들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가졌다. 


필자가 다년간 팀 켈러의 저작들을 연구한 경험에 의하면 팀 켈러 역시 이 위원회 위원들이 동의한 위 신학적 진술들과 같은 신학적 입장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필자의 관찰로는 팀 켈러는 특정한 창조의 관점을 선택하여 그것만을 주장하려고 하지 않았다. 몇 가지 의견을 살짝 언급한 적은 있어도 어떤 특정한 관점의 지지자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그런 면에서 필자는 팀 켈러가 성경의 절대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과학자들의 연구 활동을 격려하고 장려할 수 있도록 과학적 성과가 성경과 조화되도록 유연하게 접근한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일부 편협한 젊은지구론자들이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주간의 ‘날’을 24시간 하루로 못 박고 이 해석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타협이론이라며 비성경적이라고 공격하는 그들은 건전한 기독교 교단이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지 깊이 공부할 필요가 있다. 


OPC 교단의 특별 연구위원회는 교단이 수용할 수 있는 창조에 대한 관점을 다섯 가지로 크게 구분하여 정리하였다. 위원회는 이 다섯 가지 관점이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가 가진 교리 체계의 정합성을 부정하는지 아닌지 잘 검토하였고, 주석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이 다섯 가지 관점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관점은 ‘일반적인 길이의 날 관점’(the days of ordinary length view)이다. 이 관점은 24시간 길이를 갖는 일반적인 날들에 걸쳐서 창조가 이루어졌다고 이해하며, 교회사에서 주된 입장을 차지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스트민스터 총회 참석자들이 24시간 하루 관점을 특정하여 창조를 설명하지 않았다고 하며, OPC 교단 내에서도 이 관점만을 유일한 창조의 해석이라 하지는 않는다고 밝힌다.


두 번째 관점은 ‘특정되지 않은 길이의 날 관점’(the days of unspecified length view)이다. 이 관점은 창조 주간의 일곱 날이 인접해 있는 것은 맞지만 각 날의 길이는 특정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린(W. H. Green), 바빙크(Herman Bavinck), 워필드(B. B. Warfield), 영(E. J. Young) 등이 이런 관점을 주장한다.  


세 번째 관점은 ‘날-시대 관점’(the day-age view)이다. 이 관점은 창조의 날들 하나하나가 긴 기간을 갖는 각 시대를 가리킨다는 입장이다. 핫지 부자(C. Hodge와 A. A. Hodge), 메이첸 등이 이런 관점을 주장한다. 


네 번째 관점은 ‘틀 관점’(the framework view)이다. 이 관점은 창조의 여섯 날을 일반적인 24시간 하루의 날로 생각하지만, 그 날들이 비유적인 기능을 하는 것으로 여긴다. 창조 주간의 전반부 3일과 후반부 3일을 대응시켜, 전반부 3일에는 각 공간을 만들고 후반부 3일에는 각 공간을 채울 것들을 만들었다는 것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클라인(Meredith G. Kline), 페스코(John V. Fesko), 아이언스(Lee Irons) 등이 주장하는 관점이다. 


다섯 번째 관점은 ‘유비적 관점’(the analogical view)이다. 이 관점은 창조 주간의 하루는 분명 역사적인 개념이지만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활동이 이루어진 기간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유비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콜린스(C. John Collins), 갓프리(W. Robert Godfrey) 등이 이 관점을 주장한다.


이 다섯 가지 관점은 모두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의 교리 체계 정합성을 위배하지 않는다. OPC 교단은 이처럼 유신진화론은 배제하되 젊은지구론의 관점인 ‘일반적인 길이의 날 관점’ 외에도 네 가지 다른 관점들, 즉 ‘특정되지 않은 길이의 날 관점’, ‘날-시대 관점’, ‘틀 관점’, ‘유비적 관점’도 수용 가능한 창조에 대한 타당한 관점이라고 판단하였다.


팀 켈러가 속한 PCA 교단뿐만 아니라 OPC 교단도 이처럼 다양한 관점들을 인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팀 켈러가 지향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

작가 이윤석

충청남도 아산시청에서 시장을 보좌하는 정책보좌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KAIST(경영공학 박사)와 총신대학교(조직신학 박사)에서 공부했으며, 삼성SDS, 포스코경영연구원에서 근무했고, 신학 공부 후 아산시민교회, 남서울교회, 독수리기독학교에서 사역했다. 현재 서울기독교세계관연구원 원장/연구위원, 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화론, 성화란 무엇인가, 4차 산업혁명과 그리스도인, 온라인으로 선교합니다(공저), 현대 칭의론 논쟁(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