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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QT_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마음
2020-08-14
사무엘상 9장 15–27절15. 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16.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17.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하시니라 18. 사울이 성문 안 사무엘에게 나아가 이르되 선견자의 집이 어디인지 청하건대 내게 가르치소서 하니 19.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선견자이니라 너는 내 앞서 산당으로 올라가라 너희가 오늘 나와 함께 먹을 것이요 아침에는 내가 너를 보내되 네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네게 말하리라 20. 사흘 전에 잃은 네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아니냐 하는지라 21.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22. 사무엘이 사울과 그의 사환을 인도하여 객실로 들어가서 청한 자 중 상석에 앉게 하였는데 객은 삼십 명 가량이었더라 23. 사무엘이 요리인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주며 네게 두라고 말한 그 부분을 가져오라 24. 요리인이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을 가져다가 사울 앞에 놓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보라 이는 두었던 것이니 네 앞에 놓고 먹으라 내가 백성을 청할 때부터 너를 위하여 이것을 두고 이 때를 기다리게 하였느니라 그 날에 사울이 사무엘과 함께 먹으니라 25. 그들이 산당에서 내려 성읍에 들어가서는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담화하고 26. 그들이 일찍이 일어날새 동틀 때쯤이라 사무엘이 지붕에서 사울을 불러 이르되 일어나라 내가 너를 보내리라 하매 사울이 일어나고 그 두 사람 사울과 사무엘이 함께 밖으로 나가서 27. 성읍 끝에 이르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사환에게 우리를 앞서게 하라 하니라 사환이 앞서가므로 또 이르되 너는 이제 잠깐 서 있으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더라 ‘내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렸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은 그들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들과 같은 왕. 그를 통해 주어지는 승리와 번영, 정치적 안정, 국가적 진보를 꿈꿨기 때문이다.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탄식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삼상 8:8)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스스로 파기하려 했고, 이는 하나님에 대한 명백한 반역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왕을 허락하셨다(삼상 8:22). 사울을 택하신 하나님은 놀라운 섭리로 그를 인도하여, 마침내 사무엘을 만나게 하셨다. 그리고 섭리의 목적을 이렇게 밝히셨다.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 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16절) ‘내 백성’ 이스라엘! 그들이 비록 반역했지만, 하나님을 버리고 왕을 택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향해 눈을 돌리셨다. 하나님의 백성인 그들을 구원하길 원하셨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다.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의 순종사무엘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는 자였다.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할 때,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악한 것임을 알고 기뻐하지 않았다(삼상8:6). 그러나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다.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통로가 되었다.사무엘은 그의 얼굴도 몰라보는 사울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먹었다(24절). 이는 단순히 한자리에서 식사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무엘과 사울 사이에 친밀한 교감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함께 먹는 행위는 매우 가까운 관계임을 나타낸다(김구원).또한, 사울과 함께 밤을 새우며 하나님의 뜻을 그에게 전했다(25절). 일련의 과정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뜻을 향한 적극적인 순종이었다.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했던 연약한 자,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던 자, 하나님께 등을 돌린 원수였던 우리다(롬 5:6-10). 우리는 하나님을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알 수 없는 은혜로 우리를 바라보시며 ‘내 백성’이라 부르셨다. 절망과 탄식 속에 살던 우리를 구원하길 원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 그는 누구보다 성부의 마음을 잘 아셨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셨다(빌 2:8). 그리스도의 순종은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했고, 산 소망으로 이 땅을 살게 했다.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세상을 구원하길 원하신다. 그리스도의 순종을 본받아 구원의 통로로 살아갈 사람을 부르신다. 당신은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지 않을까?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박재진 목사(부산영안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섭리가 이끄는 삶
2020-08-13
사무엘상 9장 1–14절1.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2.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3.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의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4.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그 곳에는 없었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니라 5. 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 가던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하니 6.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 7.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주머니에 먹을 것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하니 8.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쳐 달라 하겠나이다 하더라 9.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10.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성읍으로 가니라 11. 그들이 성읍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으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하니 1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서 갔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가 오늘 성읍에 들어오셨나이다 13. 당신들이 성읍으로 들어가면 그가 먹으러 산당에 올라가기 전에 곧 만나리이다 그가 오기 전에는 백성이 먹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제물을 축사한 후에야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니이다 그러므로 지금 올라가소서 곧 그를 만나리이다 하는지라 14. 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리로 들어갈 때에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마주 나오더라 모든 우연은 하나님의 섭리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7문답은 섭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섭리란 하나님의 전능하고 언제 어디나 미치는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마치 자신의 손으로 하듯이,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여전히 보존하고 다스리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잎사귀와 풀,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먹을 것과 마실 것,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 참으로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not by chance) 아버지와 같은 그의 손길(fatherly hand)로 우리에게 임한다.”사울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가 왕으로 세워지는 모든 과정은 우연의 일치로 설명할 수 없다.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를 잃어버리는 사건은 그의 인생에 일어날 섭리의 시작을 알렸다. 사울은 한 사환을 데리고 암나귀를 찾아 나섰다(3절). 그러나 쉽사리 찾을 수 없었다. 있을 만한 곳은 다 뒤져보았지만, 나귀들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포기하고 싶었다. 결국, 그는 사환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5절). 이대로 돌아가면 사무엘을 만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때, 사환은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 말했다.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6절)사울은 알지 못했던 사무엘의 존재를 사환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었다(7절). 그러나 마침 사환에게 약간의 돈이 있었다(8절). 이에 사울은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이 있는 성읍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섭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침 물을 길으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난 그들은 사무엘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11-13절). “지금 올라가소서 곧 그를 만나리이다”(13절)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때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나오던 사무엘을 만날 수 있었다(14절).우리는 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삼상 9:15-16).그렇다. 하나님은 그의 실패와 낙담을 통해서, 사환의 입술을 통해서, 소녀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 모든 것을 연결하는 정확한 때를 통해서 그를 사무엘에게 인도하셨던 것이다.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흐르는 하나님의 섭리바울은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모든 것’에는 실패도 있고, 성공도 있다. 마주하기 싫은 상황도 있고, 영원하길 바라는 순간도 있다.그 모든 것을 채우는 관계와 만남,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시간과 그들과 나눈 대화는 평범한 일상이 감추고 있는 섭리의 순간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 19 이후 모든 것은 일상이 아니라 특별함이 된 부분이 많다. 요즘 평범한 일상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는 무엇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박재진 목사(부산영안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오래된 갈망
2020-08-12
사무엘상 8장 1–22절1.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2.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3.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4.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9.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10. 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말하여 11.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12.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13.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14.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15.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6.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17.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18.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19.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20.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21. 사무엘이 백성의 말을 다 듣고 여호와께 아뢰매 22.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간절한 기도 제목도 우상팀 켈러는 오래된 갈망이 지닌 위험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을 바쳐 마음의 가장 절실한 꿈을 이루려 한다. 이런 ‘행복 추구’가 곧 우리네 인생이 아니던가? 우리는 갈망하는 바를 얻을 길을 끝없이 찾는다. 이를 얻기 위해서라면 웬만한 것은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마음의 가장 깊은 소원을 이루는 것이 곧 자신에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일일 수도 있음은 생각지도 못한다.”이스라엘이 지닌 오래된 갈망은 무엇인가?‘모든 나라와 같이’ 그들의 왕을 세우는 것이었다(5절, 20절). 왜 그들은 왕을 원했는가?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5절) 합리적인 이유다.사무엘은 이미 노쇠했고, 그의 아들들은 뇌물을 받고 정의롭지 못한 판결을 일삼았다(3절). 한 마디로 사무엘의 뒤를 이을 지도자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 이유일 뿐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사무엘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었다.왕을 원하는 진짜 이유를 아셨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7절) 결국 그들은 강력한 왕정 제도를 통해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안정을 찾으려 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그들이 만든 신, 즉 인간 왕을 섬기려 한 것이다(8절).인생의 안정은 오직 하나님 안에사무엘은 그들에게 왕정 제도의 부정적 결과를 경고했다(11~18절). 그는 ‘취하다’라는 단어를 네 번이나 사용하며(11절, 13절, 14절, 16절), 억압과 착취가 그들을 다스릴 왕의 통치방식이 될 것이라 말했다. 그들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왕의 노예가 될 것이다(17절).그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다(18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무엘의 경고를 무시했다(19절). 그들의 시선은 이미 ‘다른 나라들’을 향해 있었다.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20절)그들은 다른 나라들처럼 살길 원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들을 위해 싸우셨던 하나님은 필요하지 않았다. 오직 그들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왕을 원했다. 이것이 그들의 오래된 갈망이었으며, 이를 얻기 위해서라면 웬만한 것은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당신의 오래된 갈망은 무엇인가? 데이비드 폴리슨은 이를 알기 위한 몇 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삶을 지속시켜 줄 안정과 안전과 수용을 얻고자 내가 의지하는 대상은 누구 또는 무엇인가? 인생에서 내가 정말 바라고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우리는 결국 실망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의미, 희망, 그리고 행복을 피조물에게 바란다면 결국 피조물은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우리 마음을 비탄에 빠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팀 켈러).지금 누구에게 혹 무엇에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박재진 목사(부산영안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회개, 신뢰의 대상이 바뀌는 것
2020-08-11
사무엘상 7장 3–17절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5.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8.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13.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15.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16.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17.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회개와 후회를 구분회개는 후회가 아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회개와 후회를 구분하며 이렇게 말한다. “단순히 당신의 죄에 대해 안스럽게 여기는 것은 회개가 아니다. 그것은 후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의 결과 때문에 후회한다. 밤에 나쁜 짓을 하고서 아침이 되면 안타까워 한다. 그러나 그것은 회개가 아니고 후회다.”물론 후회가 회개의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후회는 회개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회개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던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이스라엘은 이십 년간 지속된 블레셋의 압제 가운데 마음이 가난해졌다(삼상 7:2).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애통했다(삼상 7:2의 여호와를 ‘사모하다’는 ‘애통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다). 사무엘은 그제야 온 이스라엘을 향해 회개를 촉구했다.그가 제시한 회개의 조건은 세 가지다(3절). 첫째, 하나님께 ‘전심으로(온 마음으로)’ 돌이켜야 한다. 유대인에게 ‘마음’은 감정과 더불어 지식과 의지를 포함한다. 따라서 전심의 회개는 통전적 회개다(김구원). 둘째, 우상을 제거해야 한다. 우상은 자신의 욕망이 투영된 무언가다. 회개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의지적 표현이다. 셋째,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상과 겸하여 섬길 수 없는 분이다. 이스라엘의 애통이 후회로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다.다행히 그들은 후회를 넘어서 회개로 나아갔다. 신뢰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이킨 것이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4절) 뿐만 아니라, 그들은 미스바에 모여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회개의 모습을 보였다.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부음으로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씻음 받길 원했으며, 종일 금식하며 하나님께 죄를 자백했다(6절). 비록 블레셋이 공격해 왔다는 소식 앞에 두려워했지만(7절), 그들은 이십 년 전과는 다르게 자신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했다(8절).회개를 사랑할 수 있는가?회개가 그저 열거된 죄를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첫걸음이라면, 우리는 회개를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을 의지한 이스라엘은 그들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10절).그들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었던 블레셋을 하나님이 꺾으신 것이다. ‘에벤에셀’의 하나님. 이처럼 오직 하나님만이 무능력한 우리의 인생에 진정한 도움이 되신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의 고백이다. 우찌무라 간조는 자신이 회개한 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4월 22일, 지난날들의 죄들을 깊이 회개했고, 나 자신의 노력으로는 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전적인 무능을 느꼈다.” 그 무능함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다. 그 절망 속에 놀라운 소망을 발견한다. 이것이 회개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결국 회개와 더불어 시작되는 종교다(마틴 로이드 존스).당신의 소망은 어디에 있는가? 여전히 후회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오늘 신뢰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라!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박재진 목사(부산영안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회개를 통한 회복으로
2020-08-10
사무엘상 6장 1절–7장 2절1.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있은 지 일곱 달이라 2.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 그것을 어떻게 그 있던 곳으로 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라 3. 그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의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이유도 알리라 하니 4. 그들이 이르되 무엇으로 그에게 드릴 속건제를 삼을까 하니 이르되 블레셋 사람의 방백의 수효대로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 마리라야 하리니 너희와 너희 통치자에게 내린 재앙이 같음이니라 5.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의 독한 종기의 형상과 땅을 해롭게 하는 쥐의 형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신께 영광을 돌리라 그가 혹 그의 손을 너희와 너희의 신들과 너희 땅에서 가볍게 하실까 하노라 6. 애굽인과 바로가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 같이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겠느냐 그가 그들 중에서 재앙을 내린 후에 그들이 백성을 가게 하므로 백성이 떠나지 아니하였느냐 7.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8.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9.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 10.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11.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13.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14.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15.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라 16. 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17.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18. 드린 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큰 돌에 이르기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들의 수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 19.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20.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 21. 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이르되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진정한 회복은 회개를 통해회개 없이 진정한 회복은 없다. 그 어떤 종교 행위도 영적인 회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무려 7개월 동안 이어진 국가적 재앙은 블레셋 사람들을 비탄에 빠뜨렸다(1절). 마침내 그들은 ‘여호와의 궤’를 이스라엘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물론 그냥 보낼 수 없었다. 그들은 ‘속건제’를 통해 이스라엘의 신을 달래려 했다.블레셋의 다섯 성읍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금 독종과 금 쥐를 만들어 제물로 삼았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한 것이다(5절). 하지만 이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이들이 기획한 종교 행위는 회개가 아닌 오히려 하나님을 시험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단 한 번도 멍에를 메어 본 적이 없는 암소 두 마리가 벧세메스까지 수레를 이끌고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더군다나 아직 젖을 떼지 않은 송아지를 남겨둔 채로 말이다. 사실, 그들은 7개월간의 재앙이 그저 우연히 일어난 일이길 바랐던 것이다(9절). 겉으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듯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다(롬 1:28).그럼에도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며,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12절은 암소들이 벧세메스를 향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똑바로 갔다고 기록한다. ‘대로로’로 번역된 히브리어 ‘빔실라 아하트’는 ‘한 길로’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암소가 가는 길을 이탈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김구원).그들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16절). 이를 통해 7개월간의 재앙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이켰다는 구절은 찾을 수 없다.이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이스라엘로 돌아온 궤를 보고 기뻐했다(13절). 그러나 그들이 7개월 전, 하나님을 전쟁의 도구로 사용하려 한 죄악(삼상 4:3)에 대해 회개했다는 기록은 없다.오히려 종교 행위로 회개의 자리를 대신했다(14-15절). 그 종교 행위마저 그릇된 방법으로 행해졌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임의로 대했다. 그들은 수컷이 아닌 암소로 번제를 드렸고(14절; 레 1:3 참조), 거룩히 다뤄야 할 ‘여호와의 궤’를 구경거리로 삼았다(15, 19절).그 결과,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회복이 아닌 죽음이었다(19절). 그들은 끔찍한 참상 앞에서 탄식하며 질문했다.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20절) 이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마음을 찢고 돌이켜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반응은 블레셋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그들은 결국 궤를 기럇여아림으로 보내며 블레셋과 동일한 결정을 내렸다(21절). 회개 대신 회피를 택한 것이다. 그 후 20년간 이스라엘은 그 어떤 회복도 경험할 수 없었다(삼상 7:2).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피가 아닌 회개회개는 단순히 종교 행위가 아니다. 종교 행위는 회개를 대체할 수 없다. 수많은 예배가 존재하는 한국교회의 내리막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기억하자. 진정한 회복은 종교 행위로의 회피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를 통해 시작된다.지금 나 자신은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 회개하는 척이 아니라 진실로 무엇을 뉘우쳐야 할까?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박재진 목사(부산영안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책인가? 말씀인가?
2020-08-09
사무엘상 5장 1-12절1.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3.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4.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5. 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 6.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7.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8.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9.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사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지라 10.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이르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11.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하게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12.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불행의 원인불행은 왜 일어나는가?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귀한 가치를 발견하고 붙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행해진다. 망하게 된다. 블레셋 지역에 재앙이 일어났다. 그 이유는 1~2절을 보면 알 수 있다.“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삼상 5:1-2)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자신들의 신 곁에 두었다. 즉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가장 큰 후회가 있다. 구글과 아마존을 매입하지 못한 것이다. 특히 구글은 매입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구글 창업자가 상장 후 투자계획서를 가지고 왔지만, 매번 지나쳤다.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성경에는 가치를 발견하지 못해서 큰 낭패를 본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남유다는 멸망시기 때 예언의 진정성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유다는 예수님을 통해 복음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 가치를 알아보지 못할 때 큰 실패를 경험한다.본문을 보면 갈등은 더욱더 심화 된다. 10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 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이르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삼상 5:10)하나님의 언약궤는 블레셋 지역에 연속으로 재앙들을 가져왔다. 하나님의 언약궤의 가치를 계속적으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말씀을 상징한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성경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수많은 책 중의 하나인가?아니면 전능하신 창조주의 말씀인가?바로 눈앞에 진리의 말씀인 성경이 있음에도 그것을 믿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많다. 불행 중의 불행이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구글을 매입하지 못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후회함일 뿐만이 아니라 영원함을 놓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을 책이 아닌 말씀으로 대해야 한다. 말씀은 하나님의 절대적 기준이다.블레셋 사람들은 큰 대가를 치르고 다시 하나님의 궤를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당함을 면하게 하자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삼상 5:11-12)하나님은 법궤를 빼앗긴 백성에게 다시 마음을 향하신다. 하나님의 마음과 가치는 항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다. 그렇다면 성도는 어떤 가치를 붙잡아야 할까?하나님의 영원한 가치를 붙잡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 가치를 어떻게 붙잡을 수 있을까? 이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박준호 목사(HisStroy 부편집장)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인생은 ‘메시지’다
2020-08-08
사무엘상 4장 12-22절12.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나와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13. 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옆 자기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읍에 들어오며 알리매 온 성읍이 부르짖는지라 14. 엘리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이 떠드는 소리는 어찌 됨이냐 그 사람이 빨리 가서 엘리에게 말하니 15. 그 때에 엘리의 나이가 구십팔 세라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16. 그 사람이 엘리에게 말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이르되 내 아들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17.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19. 그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하여 해산 때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것과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20. 죽어갈 때에 곁에 서 있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하지도 아니하며 관념하지도 아니하고 21.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22.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세 사람의 죽음인생은 ‘메시지’다. 사람은 누구나 흔적을 남기며 살아간다. 그 삶의 흔적이 메시지가 되기에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 이렇게 삶의 흔적은 메시지가 되어 누군가에게 기억된다. 이런 면에서 삶이 중요한 메시지만 삶의 마지막인 죽음은 더욱 강력하고, 최고의 메시지 된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의 마침표이자, 느낌표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죽음은 강렬하고 감동적인 메시지를 준다.오늘 본문은 세 사람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 세 사람의 죽음은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가?세 사람의 죽음은 하나님의 영광과 심판에 대한 메시지다. 엘리와 그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다.제사장들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한다.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메신저이기 때문이다. 사실 백성들은 제사장의 삶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떠올린다. 하지만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세상의 쾌락을 구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추구하는 삶보다 욕망의 껍데기로 만족하는 인생을 살았다. 이들의 죽음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심판하심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그리스도인의 삶은 ‘메시지’다. 엘리와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기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의 메시지대로 살기보다 자신의 껍데기에 치중했기 때문이다.한 아기의 출생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보람있는 일은 무엇일까? 많은 것들 중 한 가지는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일일 것이다. 부모에게 자녀는 삶에 존재의 한 귀한 이유이다.특히 부모에게 자녀출산의 순간은 고통스럽지만 기쁨이다. 그토록 기다리던 새 생명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인생의 우선순위를 가정에 둔다. 자녀를 양육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든 인생의 초점이 여기에 맞추어져 있기도 하다.하지만 오늘 본문의 한 여인은 자신의 아이가 태어났는데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아들을 낳았는데도 관심이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기 때문이다.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사는가? 신앙인들은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의 영광에 두어야 한다.본문에 한 가정에 한 아기가 태어났지만 세 사람이 죽었다. 기쁨보다 고통이 더 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붙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삶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의 영광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삶은 비극적이다. 삶의 모든 행복이 무너진다.그리스도인의 삶은 ‘메시지’다. 엘리와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기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의 메시지대로 살기보다 자신의 껍데기에 치중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메시지대로 살아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박준호 목사(HisStroy 부편집장)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시선을 빼앗기면 시대도 빼앗긴다
2020-08-07
사무엘상 4장 1-11절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2.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3.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4.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6.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7.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8.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9.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10.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초점이 흐려진 이스라엘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이스라엘의 싸움은 무기나 군사의 숫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우실 때 승리하였다. 오늘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을 위해 에벤에셀에 진을 쳤다.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이라는 뜻이다.하지만 이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움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4천 명이 죽고 전쟁에 패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장로들은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패하게 하셨는고”라고 탄식했다. 본문에서 ‘어찌하여’에 해당하는 ‘람마’는 답을 기대하는 질문이 아니라 탄식과 원망을 표현하는 수사적 표현이다.또한, 이 문장의 뜻은 블레셋이 잘 싸워서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셔서 이긴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장로들의 탄식 소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렸다는 사실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다. 이들은 전쟁 패배의 책임을 자신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렸던 것이다. 이는 초점이 흐려졌기 때문이다.초점이 흐려지면 제대로 볼 수 없다. 하나님을 향한 초점이 흐려지니 하나님도 상황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니 하나님을 수단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패배는 언약궤가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실패한 것이 원인이다.초점이 흐려지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어떠한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도 하나님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죄악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시선을 빼앗긴 이스라엘드디어 기다리던 언약궤가 이스라엘의 진영 안에 들어왔다. 이스라엘이 큰소리로 외치자 땅이 진동했다. 그들의 선조들이 여리고 성 칠 때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때의 기적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이스라엘의 시선은 오직 언약궤를 향하고 있었다. 언약궤만 있으면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외침은 땅을 울렸으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셨다.그들은 큰소리로 외쳤지만, 하나님의 개입이 없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쳤다. 결국,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대패하였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했어야 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지 못하고 언약궤 자체에 시선을 빼앗겼다. 이스라엘이 시선을 빼앗길 때 언약궤를 빼앗겼고, 엘리의 시대도 이스라엘의 평화도 빼앗겼다.하지만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도 시선을 빼앗기지 않으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의 무릎을 꿇으셨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신 것이다.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단의 권세를 깨트리셨다. 사단의 시대를 빼앗고 평화의 시대인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였다.당신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김진호 목사(동신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희귀해진 말씀
2020-08-06
사무엘상 3장 1-21절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4.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5.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6.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8.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9.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1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2.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15.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의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16.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이르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17. 이르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8. 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19.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20.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어린 사무엘의 섬김하나님의 나라는 아무리 어리더라도 섬길 수 있다. 성경은 사무엘을 ‘아이’라고 명시한다. ‘아이’는 히브리어로 ‘나하르’(רַעַ֫נ)로 ‘어린 남자 아이’를 말한다.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성전에서 엘리 대제사장 아래서 섬겼다. 어린아이가 제대로 무엇을 섬길 수 있었을까?대제사장 ‘엘리’는 눈이 어두웠다(2절). 기력이 쇠했고, 발걸음도 느렸다. 그런 엘리는 영적으로도 어두웠다. 즉, 가시적 시력만 안 좋은 것이 아니라 영적인 시야도 닫히고 있었다. 그런 엘리는 자녀 교육에도 실패한 대제사장이었다. 그 아들들은 제사장들이었지만 그 횡포로 모든 백성의 원성이 자자했다. 그런데 사무엘은 그런 시기에 어리지만, 하나님을 섬겼다. 성경은 그런 사무엘을 이렇게 표현한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겼다”(1절). 단지 아이 사무엘이 여호와를 섬겼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는다.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겼다고 한다. 즉, 사무엘은 영적으로 어두운 지도자 앞에서도 타락하지 않고, 엘리의 아들들과는 달리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섬겼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상황 가운데 어린 사무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다. 엘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멀리할 때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성전 안에서 잤다. 늦게까지 성전의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섬겼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다. 아이 사무엘이 성전에서 무슨 대단한 일을 했는가? 그렇지 않다. 사무엘은 촛대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고, 성전에서 그냥 잤다. 그런데 그런 일을 충성되어 섬기는 사무엘을 하나님은 기뻐하셨다.그런 사무엘은 죽을 때까지 약 85세까지 역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로 오랫동안 섬겼다. 그러는 가운데 사울 왕과 다윗 왕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부르심하나님은 사무엘을 반복해서 부르셨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4절) 하나님은 사무엘을 지속적으로 부르셨다. 사실 하나님은 사무엘만 부르신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엘리도 부르셨다. 엘리의 두 아들들도 부르셨다. 그러나 엘리는 영적으로 어두워져 갔다. 그 엘리의 아들들은 함부로 고기를 가져가 먹었다. 불량배 같은 엘리의 아들들은 못 들은 것이 아니라 안 들으려고 했다. 사무엘이 엘리의 방으로 계속 오자, 엘리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줄 알았다.“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8절)엘리는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 이 작은 아이, 사무엘을 부르고 계심을 알았다. 그때 엘리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나님이 친히 사무엘의 이름을 부르셨다(10절). 그때 사무엘은 엘리가 말해준 대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대답했다. 이전에는 단순히 엘리의 심부름을 하며 성전에 있던 어린 몸종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르시자 어린 사무엘은 시대적 인물이 되었다.엘리 아래 거하던 어린 사무엘은 이제 전능한 하나님의 몸이 되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사무엘의 위치와 영향력은 달라지기 시작했다.이제는 대제사장 엘리가 사무엘에게 어떤 계시가 임했는지 물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엘리의 가문은 저버림을 받았다. 엘리도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더 이상 대제사장도 없고, 그 아들들도 성전의 제사장들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그의 역사를 쉬지 않으사 바로 아주 어린 사무엘을 부르셔서 세우고, 그 역사를 펼쳐 가셨다.심판하시는 이유?하나님은 왜 엘리와 그 아들들을 심판하셨는가?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라고 하셨다(13절). 그들이 심판을 받은 것은 모르는 죄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아는 죄로 멸망했다.나 자신은 어떤 죄로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을 수 있을까? 너무 게으른 종은 아닌가? 너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살지는 않는가? 세상적 정욕, 욕심, 이생의 자랑이 내 속에 가득한 채 살고 있지는 않은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김영한 목사(품는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엘리 집안의 몰락과 언약의 완성
2020-08-05
사무엘상 2장 22-36절22.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2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24.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25.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27.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28.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내 제사장으로 삼아 그가 내 제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31.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32.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33. 내 제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네 사람이 네 눈을 쇠잔하게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서 출산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34.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35.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36. 그리고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이르되 청하노니 내게 제사장의 직분 하나를 맡겨 내게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수직적 자녀교육의 중요성회개하여 돌이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22절부터 구체적으로 언급된 엘리 아들들의 죄악은 매우 심각함을 알 수 있다.“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삼상 2:23-25)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을 뿐 아니라, 그 악행들이 모든 백성들에게서 들릴 정도로 매우 위중하였다.대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을 향한 충고는 그들에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기 때문이었다.우리 삶 속에서 회개하여 돌이킬 기회가 있다.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에 반하여 사무엘은 26절에서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는 말씀으로 대조를 확연히 드러낸다.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말씀을 전한다. 그 내용은 엘리 집안의 몰락에 대한 예언이다. 구체적으로 그들의 죄악상을 먼저 언급하고 그에 따른 심판을 선포한다.모든 것이 언약의 완성을 향한 과정엘리 집안의 몰락은 하나님 언약의 완성을 위한 과정이었다. 엘리 집안이 받았던 예언의 내용은 이렇다.첫째,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른다는 것이었다. 둘째,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이리라는 것이었다. 마지막 셋째, 제사장의 직분을 다른 집안으로 넘길 것이라는 예언이었다.엘리의 집안은 원래 아론 계통의 제사장 후손이다. 그런데 사무엘상에서 그 제사장 집안의 몰락을 말한다. 35절의 예언은 직접적으로 엘리와 그의 두 아들의 뒤를 이어 제사장 직분을 맡은 사무엘에게서 성취된다.그리고 후대에 엘리 가문의 뒤를 이어 제사장 직을 맡게 된 사독의 등장으로 성취된다. 최종적으로 이 예언은 완전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된다(히4:14) (명확한 이해와 삶의 적용을 위한 사무엘상, 42쪽).한 사람 또는 한 집안과 더 나아가 한 민족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속에서 있다. 한 사람과 한 집안을 통해 언약의 완성을 향해 가게 된다. 이런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볼 때 믿음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경외하고,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는 자는 말씀을 업신여기고, 언약을 깬다.지금 영적으로 깨어 무엇을 보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고훈 목사(진리샘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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