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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QT_재판받으시는 예수님
2020-06-19
마가복음 15장 1-15절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2.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4.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6.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받으시는 예수님(1절-5절)타락한 권력은 진리가 아니라 대중에 의해 이끌린다. 예수님은 결박당한 채 빌라도 법정에 끌려오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죄인 취급했고, 정치범으로 몰아 사형선고를 받으려 했다. 하지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질문에만 “네 말이 옳도다” 하셨고, 그 외엔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이에 빌라도는 놀랍게 여겼다.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한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은 채 침묵하고 계셨다. 얼마든지 변명할 수 있고,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침묵하고 계셨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아셨기 때문이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희생을 통해 죄인 된 우리를 살리고 구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신의 독생자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세상에 보내셨던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것을 본받아야 하고, 때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관계가 있다면 묵묵히 감당해 내는 것을 본받아야 한다.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군중들(6절-15절)예수님을 고소하는 무리가 빌라도를 찾아가 관행대로 한사람을 석방하라고 요청한다(8절). 무리들의 관심사는 총독의 안위도 아니었고, 로마의 번영도 아니었다. 무리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예수를 처단하는 것이었다.사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죄가 없음을 알았다. 예수님께서 변명이라도 했으면 어떻게 도와줄 수 있었겠지만 어떠한 변명도 않으셨기에 도와 줄 수도 없었다. 빌라도는 십자가에 예수를 못 박고, 관행대로 한 사람을 석방하라고 소리치는 무리들의 요구를 들어주게 된다. 그렇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었다.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다수결의 원칙이 다 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주장하고, 요청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에 먼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주님의 뜻을 모르는 다수보다, 주님의 뜻을 아는 소수의 의견을 받아주고, 함께 이해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군중들은 아버지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할 수 있는 말이 많았으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순종했던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오늘도 그렇게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으로 살기를 다짐하고, 가정과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손병세 목사(The행복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2020-06-18
마가복음 14장 53-72절53.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55.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56.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 57.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여 이르되 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59. 그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 60.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1.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3.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64.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65.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66. 베드로는 아랫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 67.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69.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 70.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 71.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72.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60절-65절)결심으로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여 있는 재판정으로 갔다. 대제사장은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님을 향하여 심문한다.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이에 대제사장은 옷을 찍으며 분개했고,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 질문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곁에 섰던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를 향하여 침을 뱉었으며, 주먹으로 쳤다. 심지어 하인들까지도 주님을 향해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스스로 경건하다 여기며 사람들 앞에서 품위를 자랑하던 유대종교 지도자들이었던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욕보였다.오늘날 기독교인으로 불리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들과 유사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종교라는 탈을 쓰고 자신의 진짜 얼굴은 보여주지 않는 모습과도 같다. 겉으로는 거룩함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욕망과 더러움으로 채워져 그리스도인의 향기는 사라지고 사람 냄새만 나는 경우가 있다. 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멀찍이 따라가는 베드로(54절, 66절-72절)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혀가는 모습을 보며 거리를 둔 채 멀찍이서 따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겁을 먹고 도망친다. 베드로는 여전히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었고 버릴 수 없었기에 대제사장의 뜰까지 쫓아간다.하지만 예수를 변호할 용기가 없었고, 이 사람도 그 도당이라는 말에 겁을 먹고 결국 예수를 부인하고 만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베드로는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던 것이다.베드로는 분명 주님을 사랑하고 있었다. 본문 마지막 절(72절)을 보면, 주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 울었던 모습을 통해 주님을 사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위기 앞에 서게 되면서 위기를 뚫고 갈 힘이 없어 그토록 사랑했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말았다.만약 나에게 베드로와 같은 상황이 다가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지금이야 당연히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하겠지만 실제로도 그렇게 답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 베드로가 처했던 상황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그러므로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그분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손병세 목사(The행복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예수님의 선택
2020-06-17
마가복음 14장 43-52절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46.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48.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제자들의 선택(43절, 47절, 50절)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일해야 한다. 제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예수께로 왔다. 유다는 이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과 계획을 세웠고, 계획대로 입을 맞추며 군병들에게 예수를 넘겨준다.유다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십자가 대신 검과 몽치를 선택했고, 돈 몇 푼에 자신의 욕망을 선택하고야 말았다. 당시 곁에 있던 제자중 하나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의 귀를 자른다(47절). 분명 예수님 편에 섰던 제자였으나 그 역시 주님이 가시려는 십자가의 길을 깨닫지 못했다. 유다는 검과 몽치를 들었고, 이 제자는 검을 들어 예수님의 길을 막은 것이다. 하지만 예수를 버리고 도망친 제자들도 있다(50절). 도망친 제자들 역시 십자가의 길이 아닌 자신의 길을 간 것이다. 유다는 예수를 팔아넘기는 것을 선택했고, 한 제자는 무력으로 예수를 돕는 것을 선택했으며, 다른 제자들은 도망쳐 버리는 것을 선택했다.당시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 처음에는 주님을 따르겠노라 고백했다. 그렇게 주님과 동행했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고, 결정적인 순간이 오자 주님의 방식이 아닌 각자의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주님을 따르며 십자가의 길을 가려하는 우리는 오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예수님의 선택(46-49)주님 곁에 섰던 제자 하나가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의 귀를 떨어뜨린다. 주님은 제자를 향해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고 말씀하신다.주님은 그렇게 폭력에 맡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이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 지는 것을 선택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는 말씀을 스스로 실천하셨다.예수님은 그들의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한 자기희생과 사랑으로 그들에게 맞서는 것을 선택하셨다. 권위자들의 힘에 편승하여 스승을 팔아 넘겼던 제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무력으로 제압하거나 도망치는 제자의 모습도 아니었다.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희생하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그들을 포용하셨고, 우리를 포용하셨다. 오늘도 그 사랑에 감격하며 감사하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손병세 목사(The행복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기도해야 하는 이유
2020-06-16
마가복음 14장 32-42절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의 기도(32절-36절)기도의 응답이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앞둔 예수께서 기도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아 왔던 주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태도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다.주님은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고 하셨다. 죽음에 대한 공포라기보다 십자가 고난에 대한 무게와 책임감 때문이었다. 또한, 주님께서 드렸던 기도의 내용은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였다.이것은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순종이었고, 자기부인이었다. 결코, 쉽지 않은 순종이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했고, 제자들에게도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원대로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힘써 기도하신 것이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나의 욕망을 이길 수 없다.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를 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예수께서 순종하신 이유는 바로 우리를 향한 사랑이었다. 예수께서 기도하신 이유도 우리를 향한 사랑이다.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제자들(37절-42절)주님은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졸음을 이기지 못한 채 자고 있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셨던 말씀을 잊은 채 자고 있었던 것이다.앞선 31절에서 한 제자는 “주와 함께 죽겠다”고 장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고백과 달리 육체의 연약함은 졸음으로 나타났다. 세 번째 왔을 때에도 자고 있던 제자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이제는 자고 쉬라”고 말씀하셨다.예수님의 마음도 느껴지고, 제자들의 연약함도 이해가 된다. 심히 괴롭고 아파서 고민하고 계셨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하지만 제자들은 주님과 달리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제자들을 다시 부르시며 “때가 왔도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주님은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셨다.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도하지 않고는 주신 사명을 감당할 힘이 없다. 기도하지 않고는 육신의 연약함을 이길 방법이 없다. 기도하지 않고는 영혼을 사랑할 수 없다.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손병세 목사(The행복한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복음의 구동 원리
2020-06-15
마가복음 14장 22-31절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가니라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나 하기’ 나름인 우리의 신앙?종교와 복음은 다른 것이다. “종교의 구동 원리는 ‘나는 순종한다. 그러니 하나님은 나를 받아주신다’라는 개념이다. 반면 복음의 구동 원리는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통해 하나님은 날 용납해 주신다’는 것이다.”그러나 많은 이들이 여전히 복음이 아닌 종교의 원리로 신앙을 이해한다. 머리로는 ‘예수님이 나를 받아주셨기 때문에 바른 삶을 살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과 행동은 ‘내가 바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를 받아주신다’는 신념 위에서 이루어진다(팀 켈러).이는 복음과 복음의 결과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께 맡겼던 인생의 짐을 어느새 다시 빼앗아온다. 이들에게 복음은 더 이상 기쁜 소식이 아니다. 신앙이 ‘나 하기’에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에, 늘 자기만족과 자기혐오 사이에서 줄타기한다. 주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던 베드로도 예외가 아니었다.주님은 스가랴 13:7을 인용하여 제자들이 다 주님을 버릴 것이라고 경고하셨다(27절). 그러자 베드로는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29절)라고 말하며 자신의 충성을 변호했다. 다른 사람을 실패자로 비하하며 자신의 의를 내세웠다. 그러나 주님은 그도 실패할 것이라 예언하셨다.“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0절). 주님의 확신에 찬 말씀에 베드로는 강하게 항변했다(ἐκπερισσῶς: 힘있게).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31절)베드로라서 가능한 말이었다. 수제자라면 마땅히 보여야 할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는 철저히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고 있었다. 자신의 강한 믿음과 충성심이 믿음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주님을 따르는 믿음은 자신의 능력에 기초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마 16:24). 이는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는 것이며, 자신에 대한 모든 기대를 내던지는 것이다. 자아가 아닌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6:24에 쓰인 ‘부인하다(ἀπαρνέομαι)’는 베드로가 고백한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의 그것과 동일한 단어다.주님은 ‘너의 능력을 부인하라’ 하셨지만, 베드로는 오히려 ‘힘있게’ 자신의 부인을 부정했다. 물론 그는 최선을 다했다. 다른 제자들은 도망쳤지만, 그는 주님이 심문받으신 장소까지 따라갔다(막 14:54). 그러나 우리는 그의 실패를 안다. 그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경험처럼, 노력했지만 실패했다.모두에게 필요한 복음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종교가 아닌 복음이 필요하다. 신앙은 ‘나 하기’에 달려 있지 않다.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무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친히 ‘유월절 어린양’이 되셨다.우리의 ‘무능함’을 주님 안에서의 ‘가능함’으로 바꾸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찢으셨고(22절), 우리를 위하여 언약의 피를 흘리셨다(24절). 이를 통해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이미 용납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더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거짓말에 아직도 속고 있다면, 그것은 십자가 메시지를 거부하는 것이다.”(브레넌 매닝)당신은 어떤가? 복음 안에 있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종교의 원리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박재진 목사(부산 영안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주님, 제가 그입니다
2020-06-14
마가복음 14장 12-21절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13. 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14.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5.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니라 17. 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18.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19. 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20. 그들에게 이르시되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21.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나는 아니지요?”주님 가까이 있다하여 저절로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18절). 주님의 이 한 마디에 유월절 만찬 분위기는 얼어붙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주님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고 있었다. 열두 명 모두가 용의자가 된 것이다.요한은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요 13:22). 그 싸늘한 분위기를 상상해보라. 서로를 향한 눈빛은 마치 칼같이 날카로웠을 것이다. 곧 정적을 깨는 질문이 누군가로부터 시작되었다.“나는 아니지요?(이는 ‘분명한 부정’을 의미하는 의문문이다)” 그러자 모두가 필사적으로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 했다. “주님, 저는 아닙니다. 제가 그럴 리 있겠습니까? 저는 아니지요?” 마태는 주님을 팔았던 가룟 유다마저 동일한 질문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고 증언한다(마 26:25).만약 주님이 그 자리에서 유다의 복면을 벗기셨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악한 유다 덕에 나머지 제자들은 스스로 의롭게 여기며 묘한 안도감을 가졌을 것이다. 또한 동시에 그를 향해 분노 가득한 비난을 쏟아냈을 것이다. “우린 적어도 주님을 팔지 않아! 유다 당신에 비해 우리는 괜찮은 사람이야!”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들 역시 주님을 배반한 자들이다. 결정적인 순간을 마주하자, 그들은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다(막 14:50).우리로 인한 그리스도의 죽음하지만 주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시고도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셨다(13-15절). 자신의 ‘때(ὥρα)’가 가까이 왔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막 14:35). 제임스 에드워즈의 말처럼, 주님은 통제할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린 비극적인 영웅이 아니다.주님은 이미 세 번에 걸쳐 자신의 고난에 대해 말씀하셨다(막 8:31; 9:31; 10:32-34). 그리고 반드시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 강조하셨다.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21절), 주님은 십자가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셨다.무엇 때문인가? 유다의 배반 때문인가? 제자들의 교만함 때문인가? 아니다. 모든 화살을 그들에게만 겨눌 수 없다. 성경은 우리 모두를 죄인이라 말하기 때문이다(롬 3:9-18, 23; 5:8). 그렇다. 우리 때문에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마주해야 하셨다.그러므로 우리 중 그 누구도 ‘나는 아니지요’라고 반문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주님, 제가 그입니다.” 내가 주님을 팔아넘긴 자다. 내가 주님의 원수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이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 확증해 주셨다(롬 5:8). 그 놀라운 대속의 은혜는 우리의 한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타인을 악으로 규정하여 스스로 의롭게 여기려하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한다. 또한 동시에, 그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용납 되었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한다.마틴 루터의 고백처럼, 우리는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기보다 자신의 의를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아니지요’라고 말하며, 타인을 악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박재진 목사(부산 영안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고귀한 복음의 가치
2020-06-13
마가복음 14장 1-11절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10.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하나님을 말하면서 우상을 섬기는 삶우상은 무엇인가? “무엇이든 당신에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크게 당신 마음과 생각을 차지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다른 데서 얻으려 한다면 그게 바로 우상이다”(팀 켈러).이처럼, 인생의 의미를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찾으려 할 때, 그것은 우리의 우상이 된다. 삶의 희망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무엇이 있으면 인정받는다 여기는가? 사라질 때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우리가 섬기는 우상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다.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섬긴 우상은 종교 권력이었다. 그것이 주는 사회적 지위는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었다. 그러니 예수라는 인물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존재는 그들이 쥐고 있던 권력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들은 권력을 잃게 될까 두려웠다.두려움은 주님을 향한 분노로 변했고, 그를 죽이기 위해 교활한 속임수(1절, 흉계: δόλος)도 서슴지 않았다. 가룟 유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주님을 가까이에 두고도 다른 신을 섬겼다. 그의 우상은 돈이었다. 사도 요한은 그를 ‘도둑’이라 칭한다(요 12:6).결국, 그는 주님을 은 삼십에 넘겨주었다(마 26:15). 그러나 우상은 그들의 삶에 진정한 의미를 줄 수 없었다. 실체가 아닌 허구요, 진짜가 아닌 가짜이기 때문이다.가장 귀한 것을 드리게 하는 복음의 가치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가짜가 아닌 진짜가 필요하다. 성경은 그 진짜를 예수 그리스도라 말한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우리는 본문에 등장한 한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이를 선명히 보게 된다. 그는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망설임 없이 깨뜨렸다. 그리고 그 향유를 주님의 머리에 부었다(3절). 제자들은(마 26:8) 그의 행동에 분개했다. 그가 깨뜨린 향유 옥합은 매우 값진 것이었기 때문이다(3절). 삼백 데나리온(5절)!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임을 고려할 때, 약 일년치 임금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를 낭비라 보지 않으셨다. 오히려 주님께 좋은(καλός: 아름다운, 고귀한) 일을 하였다고 인정해주셨다(6절). 이뿐 아니라,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 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고 말씀하셨다(9절). 여자는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가치를 맛보았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것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을 만큼, 인생의 참된 의미를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했다.이처럼 복음은 우리에게 진짜를 선사한다. 결국 사라질 신기루를 찾아다니던 우리의 인생에 참된 의미가 되어 주시려 하나님이 오셨다고 말한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 무엇으로도 메꿀 수 없던 영혼의 구멍이 채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유한한 것에 속박당해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던 우리에게, 영원한 가치가 주는 진짜 자유를 소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이 이루신 그 위대한 일을 통해서! 이 놀라운 복음의 가치는 가장 귀한 것을 기쁨으로 드리게 한다.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짐 엘리엇) 주님 곁에 머물면서도 우리는 언제나 가짜 신을 섬길 수 있다.어느덧 자리 잡은 우상은 무엇인가? 유한한 것을 위해 영원한 가치를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박재진 목사(부산 영안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깨어 있으라!
2020-06-12
마가복음 13장 28-37절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1.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것 건강한 신앙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믿음이다. 1990년대 초, 시한부 종말론으로 시끄러웠던 때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다미선교회’의 휴거신앙이다. 이들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요한계시록을 근거로 하여 ‘1992년 10월 28일 24시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당시 많은 이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바쳤다. 그러나 모든 방송 매체와 세상의 이목이 집중된 그날 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님은 무화과나무 비유를 통해, 재림의 징조를 보고 그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라고 말씀하셨다(28절). 그러나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정확한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그날은 오직 성부 하나님만 아신다(32절).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이 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31절) 주님의 ‘아멘(진실로)’의 말씀. 그 말씀은 분명히 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닌, 확실히 아는 것에 두어야 한다. 그날을 소망하며 오늘을 살아야 주님은 그 말씀대로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아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된다. 주님은 이 짧은 문단에 ‘깨어 있으라’를 네 번이나 반복하셨다(33, 34, 35, 36절). 그리고 깨어 있기를 촉구하는 이 말씀이 비단 당시 제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히셨다.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37절).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함없는 말씀이며, 세대와 문화, 인종을 넘어 모든 그리스도인이 들어야 할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반드시 다시 온다. 이것은 네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그렇다면 어떻게 이 말씀에 반응해야 하는가? 어떤 삶이 깨어 있는 삶인가? 이를 위해 주님은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해 주셨다. 한 주인이 타국으로 떠나면서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고, 각각 ‘사무(일, ἔργον)’를 맡겼다. 주인이 종들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주인이 반드시 돌아올 것을 믿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요청하신 깨어 있는 삶이다.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다시 오신다는 주님의 약속을 확신하며, 바로 오늘,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 우리의 시선은 그날을 향하고, 우리의 손과 발은 오늘을 사는 것. 이것이 그날을 준비하는 삶의 태도다.주님의 재림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는가? 그 믿음은 오늘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박재진 목사(부산 영안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현재의 고난을 이기는 미래의 소망
2020-06-11
마가복음 13장 14-27절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5.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16.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7.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18.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0.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21.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23.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4.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27.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소망을 빼앗는 힘을 지닌 고난이 주는 두려움 그리스도인이 가진 영광스러운 특권 중 하나는 궁극적 미래에 대한 지식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성경을 통하여 세상의 미래를 ‘미리’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미래는 믿음을 요구한다. 우리는 여전히 오늘을 살고 있고, 마주하는 인생의 문제는 아직 겪지 않은 미래보다 더 가깝기 때문이다.오늘 경험하는 고난은 미래에 대한 소망을 빼앗는 힘이 있다. 고난이 주는 안대는 어느새 주님을 향한 시선을 가린다. 깜깜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것을 소망하게 만든다. 진리가 아닌 것을 향해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고(21절),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적과 기사’를 신뢰하게 한다(22절).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일을 미리’ 말씀해 주셨다(23절). 이 말씀을 기억하여 마주할 현실을 주의 깊게 살펴보게(23절, ‘삼가라’) 하시려고. 주님을 향한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시려고. 주님은 종말에 대한 대화를 이어가시며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서게 될 날’이 올 것이라 말씀하셨다. ‘멸망의 가증한 것(βδέλυγμα τῆς ἐρημώσε ως)’은 다니엘 11장 31절과 12장 11절의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에 대한 헬라어 번역이다. 구약에서 ‘가증함’은 주로 하나님 신앙에 맞서는 우상숭배로 언급되는데, 다니엘은 이러한 우상숭배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에서 행해질 것이라 예언한 것이다(R. T. 프랜스). 이는 일차적으로 주전 167년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성취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 제우스 제단을 세웠다(존 놀란드). 주님은 이미 예루살렘에 일어난 과거의 사건을 통해 미래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 말씀대로 주후 70년에 로마의 디도는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성전을 파괴하였다.기쁨을 회복하는 미래의 소망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궁극적으로 종말의 때를 의미한다. 주님은 그때를 일컬어 ‘환난의 날’이라 말씀하셨다(19절). 환난(θλῖψις)은 외부적 상황으로 인한 압박, 고난, 극심한 근심 등을 의미한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하시며, 이 환난이 주는 고통의 무게를 말씀하셨다. 주님의 말씀대로 성전이 완전히 무너졌듯이, 주님의 말씀대로 ‘환난의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그 환난은 우리를 흔들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고, 우리를 위해 그 환난의 날들을 감하셨기 때문이다(20절). 또한 바로 ‘그 때에’ 모든 하늘의 영광이 떨어지며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다(26절)! 주님은 열방 가운데 ‘택하신 자들’을 마침내 구원하실 것이다(27절)! 환난의 성취는 곧 구원의 성취를 의미한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다! 이 소망으로 인해 오늘을 살면서 다가올 미래를 바라볼 수 있으며, 현재의 삶이 주는 고통과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 이 시대의 수많은 문제와 혼란, 어려움과 슬픔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우는 우리가 믿는 궁극적 미래는 세상에 소망을 줄 수 있다. 바로 여기에 해결책이 있고 대답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우리는 이미 미래를 아는 자로서, 어떤 조건이나 역경 속에서도 근본적인 기쁨과 확신을 잃지 않는 자들로 우뚝 서야 한다(마틴 로이드 존스).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박재진 목사(부산 영안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성전의 무너짐과 다시 세워짐
2020-06-10
마가복음 13장 1-13절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3. 예수께서 감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7.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2.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성전이 무너짐 우리가 사는 곳은 영원한 땅이 아니다. 성전에서 나오면서 한 제자가 질문한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1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2절) 성전중심의 신앙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정말 충격적인 말씀이었다.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꾼들이 가득한 성전을 뒤엎으시며 성전청소(?)를 감행하셨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으로 성전 기능의 폐지와 열매 없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하셨다. 성전 안에서 산헤드린과의 논쟁을 통해서 예수님의 심판의 권위를 분명히 드러내셨다. 성전을 나오시면서 한 제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성전의 무너짐을 예언하신다. 이 지점에서 성전중심의 유대 신앙이 어떻게 변질되어 있고, 그 결과가 어떠할지 말씀하고 있다. 평행구절에서 누가는 성전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한다. “어떤 사람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눅 21:5).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전이지만, 속은 강도의 굴혈로 타락한 이중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 성전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예언하신다. 오늘날 교회에 적용해 볼 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재난의 시작과 견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 오르셔서 예루살렘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신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가 조용히 예수님께 질문한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4절).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말씀하신다.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 난리와 난리의 소문, 민족과 나라 간의 갈등, 기근과 지진을 언급하시며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7절)을 말씀하신다. 재난(ὠδίν/오딘)이라는 뜻은, “해산의 고통”을 의미한다.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과 일어날 징조를 말씀하시면서 “오딘”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 일으키리라”(요 2:19) 성전을 뒤엎으시며 정결하게 하시는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여기서 성전은 예수님의 몸을 가리킨다. 이는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거라는 예언의 메시지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예고하는 이 갑작스런 메시지의 의미는 무엇일까? 타락한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지게 되고, 그 무너진 성전을 대신해서 예수님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질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다. “재난(오딘)의 시작”이라는 뜻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막 1:1)을 위해 옛 성전은 무너지고 새 성전이 세워지는 “잉태를 위한 고통”을 의미한다. 새 성전으로서의 교회가 세워져 가는 과정 속에서 적지 않은 고통을 받을 것이며,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3절)고 말씀하신다.예수님의 예언대로 AD 70년에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해 교회공동체가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곳곳에 세워진 수많은 교회들을 바라보시며 예수님은 어떤 마음이실까? 또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사람들이 아름다운 돌과 예물로 화려하게 꾸며진 성전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너희가 성전을 바라보고 있지만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날이 올 것이다.”(눅 21:5-6/공동번역)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김영광 목사(The Story Church) 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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